"처음부터 진범 확신…사필귀정이죠"

14년전 '이태원 살인' 담당
김락권 금천署 강력팀장

"초동수사가 미흡했다고요. 도대체 누가 그런 말을 퍼뜨린 건지 모르겠어요…."

김락권 서울 금천경찰서 강력5팀장(경위 · 54 · 사진)은 11일 만감이 교차하는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는 1997년 발생한 '이태원 살인사건'을 담당했던 당시 용산경찰서 강력1팀 소속이었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이태원동 패스트푸드점에서 대학생 조중필 씨가 목과 가슴을 수차례 찔려 잔혹하게 살해된 사건이다. 김 팀장은 '이태원 살인사건'을 수사했던 형사 중 현직에 있는 유일한 경찰관이다.

"당시 초동수사가 미흡했다고 뭇매를 맞았는데 정말 열심히 수사했어요. 수사 지휘선 쪽에서 어떤 지적도 나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미군 측에서 이렇게 빨리 신병을 인도하고 협조했던 전례가 없었어요. "냉정을 잃지 않던 김 팀장은 초동수사 문제로 화제를 옮기자 분통을 터뜨렸다.

"아더 패터슨과 에드워드 리는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굉장히 철이 없었어요. 반성하는 기미도 없었죠.서로 범인이라고 지목하면서도 장난스럽게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어요. "

그는 2009년 개봉한 영화 '이태원살인사건'을 보지 않았다. "홍기선 감독이 이것저것 묻기에 여러 가지 얘기를 해줬어요. 그런데 실제 사건과 다르게 각색됐더라고요. 감독 연락처도 지워버리고 영화도 보지 않았어요. "

김 팀장은 용의자로 지목된 두 명 중 주한미군 자녀인 패터슨을 진범으로 확신했다. "패터슨의 친구가 패터슨을 범인으로 지목했어요. 피 묻은 셔츠를 소각장에서 발견했죠.진범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부검 소견을 듣고 리를 범인으로 지목했죠."

검찰은 "상처 중 일부가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난 것으로 미뤄 가해자의 키가 피해자보다 큰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윤성 서울대 교수의 부검 소견을 참고했다. 조씨의 키는 1m76㎝였다. 검찰은 1m80㎝가 훌쩍 넘는 거구인 리가 상대적으로 왜소한 패터슨보다 부검의의 소견에 더 가깝다고 판단했다.

리는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은 반면 패터슨은 흉기 소지 혐의만 적용받아 기소됐다가 1998년 8월 특별사면됐다. 패터슨은 1999년 8월 잠시 출국 금지가 해제된 틈을 타 미국으로 도주했다 최근 미국에서 구속됐다. 리는 1999년 무죄 확정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우리가 검거하고 신병 인도까지 받았는데 결국 미국으로 도망갔어요. 납득할 수 없었죠.창피했습니다. 철두철미하게 수사해서 검찰에 넘겼는데….그래도 유족이 '법정에 다시 세울 수 있다'는 한 가닥 희망을 갖게 됐으니 다행이에요. 지금까지는 절망 상태 아니었겠어요. "

범죄인 인도 요청에 따라 패터슨이 한국으로 송환될 가능성에는 의구심을 나타냈다. "영화가 개봉한 뒤 당연히 (패터슨을) 송환할 줄 알았어요. 실제 송환이 이뤄진다 해도 언제 이뤄질까요. 한국인도 송환하려면 몇 년씩 걸리는 걸로 알고 있어요. BBK사건 때 김경준 씨도 송환하는 데 3년 걸렸어요. 제가 현직에 있는 동안 송환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