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한국사회 인재관에 물음표를
인재 전쟁(War for talent) 시대! 이젠 매우 익숙해진 슬로건이지만 행여 인재를 둘러싼 우리의 인식 수준이 근거 없는 고정관념과 과장된 거품으로 채워져 있는 건 아닌지 우려가 깊어만 간다.

말콤 글래드웰은 그의 저서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참을 수 없이 궁금한 마음의 미스터리》에서 인재론과 관련해 흥미진진한 사례들을 예시하고 있다. 그 중 인상적 실례를 하나 소개해본다. 아메리칸 풋볼 리그에서 대학 시절 스타 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린 선수들 가운데 프로 리그에 진출한 이후 이름값을 해내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학 시절 화려한 스타덤에 올랐던 발군의 선수들이 왜 프로 무대에 발을 내딛는 순간 빛을 잃고 스러져 버리는 것일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오랜 시간 현장을 관찰하고 관련 실무자들과 심층 인터뷰를 나눈 결과 글래드웰이 찾아낸 답인 즉,대학 리그와 프로 리그 사이엔 게임의 룰이 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곧 대학 리그에서는 스타 플레이어(주로 쿼터백)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그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풀어나간다는 것이다. 가능한 한 스타의 플레이가 돋보이도록 팀워크를 구축하기에 대학의 스타는 동료들의 희생을 전제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란 이야기다.

반면 냉혹한 프로의 세계에선 어느 누구도 스타를 띄워주기 위한 희생을 원치 않는다. 따라서 프로의 세계에서 스타가 되기 위해선 동료들이 저마다의 포지션에서 충분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팀워크를 공고히 하고 선수들 간 경쟁과 갈등을 조율하면서 팀을 리드해가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만 한다.

결국 글래드웰의 주장은 공식 학교교육 아래에서는 단독 플레이에 능한 인재를 선호하지만,학교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질적으로 새로운 게임의 룰이 적용되면서 학교의 수재가 사회의 둔재로 절하되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예리한 통찰에 내포된 함의는 우리네 상황에서 시사하는 바가 더욱 크리란 생각이다.

10월의 대학가는 국내 기업의 대규모 공채 시즌을 맞이해 저마다의 수준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소위 '대학 등급제'가 공공연한 비밀로 자리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도권의 일부 명문대 학벌이 아니고서는 면접 관문조차 뚫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뿐이랴,한 기업이 탐내는 인재는 다른 기업에서도 탐을 내기에 채용 문턱에서부터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온 몸으로 체감함은 물론,대학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2 대 8 양극화'의 현실을 실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글래드웰의 통찰을 상기한다면,명문대 진학부터 대기업 취업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학벌과 탁월한 스펙을 자랑하는 이들은 지금까지 단독 플레이어로서 성실한 자기관리를 주도면밀하게 수행해온 '제한적 인재'들임이 분명하다. 학교란 공간은 개인기에 능한 이들을 높이 평가해주는 반면,사회가 요구하는 팀워크를 선호하는 이들에 대해선 '커닝'이란 낙인을 부여한다지 않는가.

언젠가 '학사경고 받은 사람 모두 모여라!'란 문구를 담은 중소기업의 채용 광고 포스터를 보곤 꽤나 신선한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너도나도 학점,공인영어점수,자격증의 노예가 돼가는 현실에서,감히 학사경고를 받은 학생들의 만용을 높이 산 기업의 여유와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성적 좋은 이들이 조직 내 성과도 우수할 것이란 전제,명문대 출신일수록 높은 지능(IQ)을 자랑할 것이요 조직을 스마트하게 이끌어갈 것이란 함의,한국사회에선 학벌이 최고의 사회자본으로서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란 가정 모두에 대해 의문부호를 찍고 다시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함인희 <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