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복지예산 92조…이미 적정한 수준에 육박" 47%
"내년 복지예산 92조…이미 적정한 수준에 육박" 47%
성장이 우선이냐 분배가 먼저냐.'파이'를 키워야 나눌 몫이 커진다는 성장우선론과 잘 나눠야 더 클 수 있다는 분배우선론은 1970년대 산업화 이후 민주화를 거쳐 21세기에 도달할 때까지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해묵은 이슈다.

우리 사회 오피니언 리더들은 이에 대해 지금은 성장에 방점을 찍어야 할 때라고 답했다.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에 '성장잠재력 확충'(48.6%)을 둬야 한다는 응답이 '양극화 해소를 위한 복지 확대'(17.0%)에 비해 세 배가량 많았다.

◆내년 복지지출 비중 사상 최대

"내년 복지예산 92조…이미 적정한 수준에 육박" 47%
정부는 내년 복지 예산을 올해보다 5조6000억원(6.4%) 증가한 92조원으로 잡았다. 전체 예산의 28.21%로 역대 최대 비중이다. 설문에서 가장 많이 꼽은 적절한 복지 지출 비중인 30%(47.9%)에 거의 도달했다.

내년 예상 국내총생산(GDP) 1250조원의 7.36%가 복지에 쓰이게 된다. 물론 유럽의 20~30%와 비교하면 아직 높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조세나 연금제도 등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곤란하다. 유럽이 재정위기로 홍역을 앓고 있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97년 한국의 복지 지출은 GDP(563조원)의 3.8%에 불과했다. 복지 지출 비중이 외환위기 이전과 비교해 두 배로 증가한 것이다. 금액으로는 21조원에서 92조원으로 네 배 이상 커졌다.

◆경직성 높아 재정 위협할 수도

복지 지출은 한번 늘어나면 줄어들지 않는다. 한국조세연구원은 국민연금 등 기존 제도만으로도 한국의 복지 지출은 2050년에 GDP의 24.7%까지 늘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19.3%)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전체 인구의 11.3%로 예상되는 고령 인구(65세 이상) 비율이 2050년에 38.2%로 높아지는 게 결정적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복지제도는 한번 도입하면 축소나 폐지가 쉽지 않다"며 "우리나라는 저출산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만큼 무분별한 신규 프로그램 도입은 금물"이라고 말했다.

설문에서 복지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을 막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엄격한 재정 준칙 마련'(42.0%)이 꼽혔고,다음으로 '선심성 공약을 막기 위한 선거제도 개편'(22.0%) '자발적인 기부 문화 활성화'(21.2%) '낸 만큼 받아가는 복지제도 정착'(13.6%) 등이 뒤를 이었다. 정치권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시급하다는 뜻이다.

현행 복지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비효율적 복지 전달 체계'(36.6%)라는 응답이 많아 구조조정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지원의 우선 순위는 '출산 장려 및 영유아 보육 지원'(53.2%) '퇴직자 및 고령 인구 지원'(34.1%) '무주택 서민을 위한 주거 지원'(7.9%) 등이라고 답했다.

◆증세 없는 복지 확대 불가능

야당에서는 사회간접자본(SOC) 등 건설 토목공사에 투입되는 재원을 돌리면 복지 지출 확대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결국 세금을 더 내는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문제는 증세가 기업과 가계의 경제활동을 위축시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표를 의식하는 정치권도 적극적으로 증세에 나서기는 어렵다. 올해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지난해와 같은 19.3%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에는 오히려 19.2%로 내려갈 것으로 전망된다. OECD 평균인 25.8%에 훨씬 못 미친다.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금을 더 안 내고도 복지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은 정치권의 '집단 최면'에 불과하다"며 "장기적인 재원 확보 방안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도 "부유층에 대한 증세를 통해 복지를 확대하는 모델은 이미 스웨덴 등 유럽 국가들에서 실패한 것으로 판명이 났다"며 "복지 전달 체계를 효율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복지를 확대하면 경제활력을 떨어뜨리는 '복지의 함정'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수혜 기간을 최소화하고 자력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인센티브를 늘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욱진/이호기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