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미완의 진행형, 사진도 예외일 수 없죠"
'패션과 사진은 변화의 모든 것이다. 작업은 항상 진행형이며 혁신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

13일부터 내년 3월18일까지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에서 국내 처음으로 사진전을 갖는 명품 패션업체 샤넬과 펜디의 수석 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73 · 사진)의 미학경영론이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14세 때 파리로 이주한 라거펠트는 1983년 샤넬에서 첫 컬렉션을 선보인 이후 '샤넬이 무덤에서 일어났다'는 소리를 들으며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어릴 때 성추행을 당한 아픈 기억과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그는 하루 종일 선글라스를 착용한다. 작년 10월 선글라스를 벗은 모습이 TV에 공개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영상 인터뷰를 통해 "지금까지 최고의 작품들은 꿈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때로는 무대를 포함한 패션쇼 전체가 꿈에 나타난다"고 말했다.

샤넬,끌로에,발렌타인,H&M 등 명품 패션 브랜드 디자이너로 활약한 그는 최근 '카를 라커펠트' 의류 및 안경을 출시하고 사진 작가,영화 감독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1987년 샤넬의 컬렉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사진 작업을 시도했다는 그는 패션 모델과 배우,정물,풍경,건축 등을 렌즈에 담아냈다. 영국 톱모델 클라우디아 시퍼,존 레넌의 부인 오노 요코,샤넬의 톱모델 밥티스트 지아비코니와 캐런 엘슨,중국 인기 배우 장쯔이 등의 사진도 선보였다.
"인생은 미완의 진행형, 사진도 예외일 수 없죠"
그는 흑백,폴라로이드,스크린 프린트 등 다양한 기법으로 촬영한 인물,풍경,누드,건축 사진을 통해 '현실과 욕망의 경계'를 회화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신에게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면 '도전'이란 표현을 쓰기가 좀 어색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진은 제게 특별한 도전의 영역이죠.미래의 불확실성을 투영해낼 수 있어서 매력적이고요. "

후지 카메라를 즐겨 쓰는 그는 "렌즈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반영하지 않고 '다름'과 '차이'를 담아내는 데 훌륭한 도구"라고 말했다. 그래서 전시 주제도 '진행 중인 미완성 작품(work in progress)'으로 잡았다. 인생 역시 불완전하게 진행되듯 사진 작업도 예외일 수 없다는 얘기다. 이번 전시에는 인체의 아름다움과 에로틱한 에너지를 보여주는 누드 사진을 비롯해 샤넬과 펜디의 2011년 가을 · 겨울 시즌 컬렉션 사진,유명 모델,건축과 풍경 사진 등 400여점을 내보인다.

1997년작 '캐런 엘슨'은 폴라로이드 기법으로 영국 톱 모델 엘슨과 공간의 관계를 조명한 작품이다. 독일 화가이자 안무가 오스카 슬레머의 실험 연극 '3인조 발레'에서 영감을 받았다. 사진 예술이 공감각적인 미학을 극대화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작년 패션 잡지 '보그'의 커버스토리에 실린 작품 '토니 감과 밥티스트 지아비코니' 시리즈도 여러 장 걸린다. 사이보그 의상을 입은 여성 모델 토니 감과 지아비코니가 포옹하는 장면 등을 극적으로 잡아냈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풍경,패션 모델과 주변 풍경을 조화시킨 '세인트 트로페즈' 시리즈 등도 눈길을 끈다. 그의 아날로그 사진기와 샤넬 패션 컬렉션을 담은 단편영화도 나온다. 한국 전시가 끝나면 내년에 영국 런던 사치갤러리로 옮겨갈 예정이다. (02)720-0667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