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 같은 소리·우리 땅 정취를 색감으로 풀어냈죠"
추상화가 이두식 부산비엔날레운영위원장(64 · 홍익대 교수 · 사진)은 화단에서 '미술 행정가' '미술계 마당발'로 통한다. 화업 40년 동안 가는 곳마다 '최초'라는 기록을 남겼고 그동안 맡은 직함만 100개가 넘는다.

40대 후반에 한국미술협회 최연소 이사장을 지냈으며 배구를 좋아해 대학배구연맹 회장도 맡았다. 아시아지역 화가로는 처음 이탈리아 로마 플라미니오역에 8m 크기의 대작 '축제'를 설치해 화제를 모았다. 2003년 베이징미술관 컬렉션 이후 2008년 상하이시로부터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10년간 아틀리에를 무상으로 제공받기도 했다.

13일부터 28일까지 서울 관훈동 노화랑(02-732-3558)에서 개인전을 펼치는 이씨는 흑과 백,황금색,황토색을 활용한 100호 이상 대작 20여점을 선보인다. 그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긴 하지만 앞으로 대형 화폭에 흑백으로 집약되는 한국적 추상표현주의 작업을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때 드로잉,극사실주의 회화에 천착하다 2000년 일본으로 건너가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공부한 뒤 '한국적 추상표현주의' 화풍으로 선회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4단계로 나뉜다. '생의 기원'으로 불리는 1970년대 작업은 불명확한 외형 이미지들을 중심에 놓고 씨앗 같은 식물적 대상을 정밀하게 묘사했다. 사실적인 드로잉 작업이었다. 연필 드로잉과 수채로 대표되는 그의 화풍은 1980년대 중반부터 '축제' 시리즈로 변신했다. 정적인 묘사는 사라지고 자유분방한 필선과 격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색채 구사가 화면을 압도했다. 2000년 들어서는 색채를 이성적으로 통제한 절제미에 주안을 뒀다.

"우리 미감을 살려내는 데 색동저고리,민화만큼 좋은 소재가 없더군요. 초기에는 풍경의 속성에 역점을 두면서 형태와 여백의 균형을 모색했지만 올해부터는 우리 고유색인 흰색과 검정색을 중심으로 마음 속의 움직임을 몸짓 기호로 축조하고 있습니다. "

그동안 오방색을 중심으로 작업했으나 색을 최소한으로 축약하고 극과 극의 보색들로 화면을 채운다는 얘기다. 그는 "잭슨 폴록과 바넷 뉴먼 같은 대가들의 화면에서 분출되는 에너지를 한국적 정서와의 접점으로 치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 그림은 한국적인 정서의 분출물입니다. 정신적 긴장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미세한 순간들을 붓으로 잡아내기 때문에 지성의 사색보다 내면에서 나오는 몸짓이라고 생각해요. "

풍경과 인물 등 대상의 형태를 깨트려 색면 속에서 자연과 인간의 융합을 시도하는 그는 "작품에서 검정과 황금색은 우리 전통 풍경을 아우르고 흰색과 회색은 한국인의 정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편제 같은 맑은 소리와 우리 땅에서 나오는 후각적인 정취,산야에 흐르는 시적인 운치를 색으로 표현하는 데 주력합니다. "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