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슘페터는 실리콘밸리를 본다
그래도 다행이다. 미국에서의 데모가 '실리콘밸리를 점령하라'고 외치지 않아서다. 월가의 금융 자본가들을 향한 성난 민심과,실리콘밸리에서 애플을 창업했던 스티브 잡스라는 한 혁신적 기업가의 사망을 애도하는 분위기가 대조적이다. 어디에 길이 있는지 암시해주는 듯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월가 자본가들도 혁신적 기업가 행세를 했다. '파이낸셜 이노베이션'이라는 신조어도 생산했다. 파생상품은 그들이 말하는 금융혁신의 꽃이었다. 혁신은 더 이상 제조업이나 정보기술(IT)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말도 나왔다. 월가 자본가들은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했던 것인가.

혁신이라고 다 같은 혁신이 아니었다. 혁신을 위해서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지만 월가 자본가들은 리스크를 다른 곳으로 전가하고 확산시켰다. 만에 하나 사고가 터져도 그 피해가 무한대일 수 없다면 투자자를 많이 끌어들일수록 위험이 나눠진다는 궤변까지 등장했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전통적 리스크 분산론은 그렇게 왜곡됐고,위험이 도미노처럼 전염될 가능성은 무시됐다. 최악의 경우 사고가 부메랑처럼 돌아온다고 해도 월가 금융가들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국민혈세,바로 공적자금이다.

그들이 한 짓은 경제를 볼모로 한 '리스크 놀이(risk-playing)'였다. PC가 타자기를 내몰고 스마트폰이 휴대폰을 대체하는, 산업에서의 창조적 파괴와는 애초부터 그 성격이 전혀 달랐다. 바그와티 미 컬럼비아대 교수의 말처럼 월가의 금융혁신은 경제 전체를 파괴하는 '파괴적 창조(destructive creation)', 그 자체였다.

월가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펠릭스 로하틴은 "이제라도 월가가 산업현장에 자본을 투입하라"고 말한다. 슘페터가 혁신은 기업가의 영웅적 노력 결과이고, 그 혁신의 동반자로서 금융 역할을 말했던 것과 같은 뜻으로 들린다. 시장경제의 핵심은 기업가정신에 있고,금융은 절대 실물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상식을 새삼 일깨워주는 것 같다.

월가를 향한 분노를 '시장경제의 종언''자본주의의 모순'으로 규정하는 이들은 마르크스까지 무덤에서 끌어내고 있다. 그러나 슘페터가 살아 있다면 실리콘밸리를 볼 것이다. 자본주의는 창조적 파괴의 함수이고,창조적 파괴로 창출되는 성장의 과실은 자본가,노동자 모두에게 돌아간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슘페터 말대로면 실리콘밸리에서 기업가정신이 사라지지 않는 한,그래서 창조적 파괴가 계속되는 한,경기 사이클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엔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반(反)시장주의,반기업주의,반세계화의 확산이다. 일자리를 달라지만 새로운 투자와 성장 없이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특히 선진국은 후발국들보다 더 높은 지식,기술을 요구하는 그런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를 잘 알면서도 정치가 이번 데모를 이용하려 들면 그 결과는 뻔하다. 빈곤층 구제,복지 확충 등 대증요법이 판을 치고,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중국 인도 등에 대한 적개심을 등에 업은 온갖 보호주의가 기승을 부릴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기업가정신이 생겨날 리 없다. 그래서 창조적 파괴가 더는 일어나지 않게 되면 그 날이 바로 슘페터가 예언한 대로 자본주의의 종말이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