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救援을 바라는 시대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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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는 어둠 속 구세주 찾기…민중주의 극복하는 지도자 절실
복거일 < 소설가·객원논설위원 >
복거일 < 소설가·객원논설위원 >
'안철수 현상'은 여러 요인들에서 나온 복잡한 현상이다. 그러나 그것이 안철수 교수 개인의 됨됨이와는 그리 큰 관련이 없는 현상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실제로 그의 이력은 굉장하다고 할 수 없다. 정치 활동으로 '때묻지' 않아서 신선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 우연히 부각되면,그에게 민심이 크게 쏠리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정치적 경험이 거의 없는 여야의 서울시장 시민후보인 박원순 변호사와 이석연 변호사의 부상도 이런 추론을 떠받친다.
'안철수 현상'은 우리 사회의 깊은 곳에 존재하는 흐름과 연결된 듯하다. 민주주의 체제나 정당 정치의 문제들이 직접적 요인들이지만,근본적 요인은 현대 문명의 특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사회가 활기찬 시대엔 사람들은 세계와 자신들의 환경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찾는다. 유라시아 대륙의 문명이 이전의 수준을 훌쩍 넘어선 기원전 500년께,세계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시도한 이론들이 여럿 나왔다.
중국의 제자백가,인도의 불교와 자이나교,서남아시아의 유대교,그리스의 철학이 한꺼번에 출현했다. 이런 이론들은 신과의 직접적 소통에 바탕을 둔 이전의 이론들보다 훨씬 합리적이었다.
반면에,2세기 말엽 이후 중국의 한(漢) 제국과 지중해 지역의 로마 제국이 쇠퇴해 세상이 어지러워지자,새로운 종교들이 갑자기 세력을 얻었다. 이집트의 이시스,시리아의 불패의 태양,이란의 미트라스가 세력을 얻었고,특히 대승불교와 기독교가 번창했다. 이 종교들은 기원전 500년께 나온 이론들보다 합리성을 덜 강조하고 대신 구원을 크게 강조했다. 앞날이 어두운 상황에선,사람들은 이 세상에 대한 합리적 설명과 그것에 따른 정책들이 아니라 단숨에 어려운 처지에서 벗어나는 구원을 찾는다.
근년에 우리 사회에선 자신이나 사회의 앞날이 밝다고 믿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거푸 닥친 경제 위기들과 오래 이어진 불황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만들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수많은 젊은이들은 특히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선 합리적 설명은 매력이 작다. 현대 사회는 너무 크고 복잡하고 이해가 얽혀서,사회 문제들에 대한 시원스러운 대책은 나오기 어렵다. 게다가 가장 나은 대책들도 흔히 단기적으로는 더 많은 괴로움을 시민들에게 강요한다. 자연히,구원을 찾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요즈음 부쩍 두드러진 민중주의(populism)도 따지고 보면,이런 상황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이다. 비록 장기적으론 모두에게 해롭지만,민중주의적 정책들은 당장 어려운 처지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사람들에겐 진통제가 된다. 멀리 보지 못하는 달콤한 마시멜로일 뿐이다.
구원은 정책의 차원에선 나오기 어렵다. 정책들은 이내 검증되고 민중주의의 폐해를 아는 시민들이 적지 않다. 사람은 좀 다르다. 정치에 발을 담근 사람들은 구원을 줄 수 없음이 드러났지만,검증되지 않은 신인들은 아직 '미지수'라는 사실 덕분에 구세주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학과 기술의 빠른 발전은 현대 사회를 지속적으로 바꾼다. 특히 직업들과 일자리들이 불안해진다. 근년에 온 세계를 휩쓴 불황은 물론 사정을 훨씬 어렵게 만든다. 자연히,당장 구원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는 경향은 깊어진다. '안철수 현상'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시민들은 구원을 찾는데,지도자는 궁극적으로 합리적 설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차이를 메우고 민중주의의 빛깔이 옅은 정책들로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지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