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 재정위기가 급기야 글로벌 은행들의 신용위기로 번져가는 모양새다.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황에 몰려 있는 그리스의 국채를 많이 가진 프랑스 은행들을 시작으로 미국의 3개 간판 은행과 이탈리아 7개 은행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강등됐다. 여기에 미 중앙은행인 Fed의 이른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라는 경기부양책마저 효과가 의문시되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코스피지수가 다시 1800 수준으로 급락하고 원 · 달러환율은 연중 최고치로 치달아 1180원에 근접했다. 미국과 유럽 은행들이 기존 투자자금 회수 등을 통해 유동성 확충에 나선 결과다.

더욱 심각한 것은 위기상황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유럽에선 그리스 이탈리아 등의 긴축에 대한 저항과 정치적 갈등으로 조기 수습이 난망이어서 유로존 붕괴론까지 나온다. 미국도 쓸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다. Fed가 단기 채권을 팔고 장기 채권을 매입하는 궁여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장기금리를 낮춰 투자와 내수를 촉진한다는 것이지만, 미 기준금리가 0~0.25%로 사실상 제로금리인 상황에서 효과는 미지수다. 재정지출을 줄여야 하는 마당에 3차 양적완화에 나서기도 어렵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가 연일 미국 · 유럽의 위기를 경고하고, Fed 역시 세계경제에 상당한 하방 리스크가 있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우리도 이런 흐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미 증시에서는 지난달 이후에만 7조원 가까운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갔다. 정부 발행 5년 만기외화채권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2009년 7월 이후 최고치다. 국가 리스크가 커졌다는 얘기다. 더욱이 12개 시중은행의 외환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도 좋지 않다. 정부가 당장 외화 수급에 문제가 없다며 평판을 높이는 데만 열중할 때는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일시적이라도 외화의 수급불일치가 없도록 대비해야 한다. 은행들도 스스로 외화를 예금이 아닌 차입을 통해 조달하고 있는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위기는 소리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일단 그런 기미가 나타나면 이미 때는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