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청춘마케팅
책을 읽지 않는다는 시대,100만권이 팔렸다고 한다. 그것도 8개월 만이라니 놀랍다. 김난도 교수의 신간 '아프니까 청춘이다' 얘기다. 힘들고 지친 이 땅의 청춘들을 얼마나 잘 어루만졌으면 그럴까 싶다. 고3과 중3,수험생을 둘씩이나 키우면서도 수시로 소통장애를 겪는 기자로서는 낮게 다가서는 그의 감성부터가 놀랍다. 근엄한 '서울대 교수'가 아니라 편하고 다정하게 그냥 '난도쌤(김난도 선생님)'이다. 10대와 20대,심지어 30대까지 청년의 정서와 기분을 잡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 될 것 같다.

자칭 '시골의사' 박경철 씨와 짝을 이룬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청춘콘서트'도 외형은 일견 비슷해 보인다. 전국을 찾아가는 이 콤비의 순회공연에 대학생,젊은층은 왜 열광할까. 직선적인 대화,소박하고 편한 강연,막힘없는 비판이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이들 신(新)명사들의 거침없는 청춘 사로잡기 행보에 일단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대박을 터뜨린 청춘스타란 점에서는 비슷해 보이지만 김 교수와 안 교수의 청춘마케팅은 자못 다르다. 글로 젊은이들을 쓰다듬는 김 교수의 책이 '신(新)청춘예찬론'이라면 안-박의 콤비쇼는 잘 짜여진 청춘 기획물 같다. 한쪽이 '인생'을 논하고 다른 쪽은 '정치'로 다가선 만큼 지향점도 달라보인다. 특히나 청춘마케팅에 정치를 가미한 안 교수는 며칠 만에 유력한 대권주자 반열에 우뚝 서면서 찬사와 견제를 함께 받는 상황이 됐다. 이전부터 인터넷을 기반으로 나름의 공간을 확보한 몇몇 인사들의 청춘마케팅이 안 교수의 돌풍으로 최고점에 달한 것 같다.

신명사들의 청춘마케팅을 바라보지만 어느 경우든 빛나는 성과에 마냥 박수를 보낼 수만은 없는 심정이 된다. 안 교수의 대박 마케팅에는 마취제의 방향(芳香)도 묘하게 아른거린다. 혹여라도 우리의 현실 수준을 잊게 하고,우리 사회의 실제 역량을 무시하게 만드는 그런 환각제 성분은 없는지….정치의 길로 나서되 기존 정당은 철저히 배제하고,아주 잘 나가는 기성세대이면서 기존의 질서를 마구 질타한다. 그의 거침없는 행보에서 입시와 등록금,취업 문제로 고통받는 청춘들에게 인기영합하는 행태는 행여 없는지 의심도 해보게 된다. 실상 지금같은 탈(脫)권위,탈규격의 청춘마케팅에는 책임도 없어 보인다. 인기는 높고,지지는 폭발적이되 그에 따를 만한 애프터서비스의 의무도 아직은 없다.

짜장면보다 햄버거가 자연스럽고 웬만하면 자기 방에서 프라이버시를 보호받아온 세대들이다. 누구한테 회초리로 맞아보지도 않은 지금의 청춘들이다. 이들에게 아직도 "강해져라"고 쓴소리 하고 "어떻게든 홀로 일어서라"고 훈육하는 축이 바보인지 모른다. 청춘의 아픔을,젊음의 격정을 쓰다듬어주고 마냥 이해해주는 화려한 명사들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우상처럼 빛날수록 기자같은 구식은 상대적으로 '꼰대'로 밀린다.

그게 억울하다는 게 아니다. 한쪽에서 청춘마케팅에 성공할수록 청년들은 더욱 나약해져 캥거루족,코쿤족으로 전락할까봐 두려운 것이다. 게다가 아류들이 속속 가세한다. 청년마케팅의 이상 열기에 기성 정치인들까지 앞다투어 동참하는 게 그렇다. 반값 등록금을 시작으로 일련의 포퓰리즘 정책이 대표적이다. 보수를 표방해온 정당의 지도부까지 너도나도 청춘마케팅 대열로 달려가는 것에서 또 하나의 대유행을 걱정스럽게 보게 된다.

허원순 지식사회부장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