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뒤낭은 재산과 정열을 모두 쏟아 1863년 국제적십자를 창설했으나 알제리에서 운영하던 섬유업체가 도산하는 바람에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적십자 조직에서도 내분이 일어 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후 연금을 받아 연명하는 생활보호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1901년 첫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1910년 스위스 하이덴에서 초라하게 죽음을 맞았다.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의 친구였던 바로네스 안젤라 버데트-쿠츠는 엄청난 유산의 대부분을 자선사업에 썼다. 학교와 성당 건립,불우학생 장학기금,호주 원주민 보호재단 설립 등 온갖 곳에 도움을 줬다. 심지어 나이지리아에 목화씨 보내기,개들을 위한 음료수대 설치까지 지원했을 정도다. 그 덕에 그녀는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작위를 받았고,죽어서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구상 시인은 20년 넘은 낡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장애인 문학지 '솟대문학'에 적지 않은 기부금을 냈다. 1999년 5000만원을 기부한 데 이어 2003년엔 막바지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집 판 돈 2억원을 내놨다. 절친한 친구 이중섭이 그려준 그림을 팔아 마련한 돈도 몽땅 경북 칠곡의 한 양로원에 건넸다. 그의 시 '오늘'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기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생활의 어려움을 겪을 때 나라가 노후를 책임지는 '명예기부자법'이 추진되고 있다. 30억원 이상 기부자가 사업실패 등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면 보조금 진료비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10억원 이상 기부자도 대통령령이 정하는 데 따라 일정액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한단다. 이 법은 지난 10년간 100억원 넘게 기부한 가수 김장훈 씨 이름을 따서 '김장훈법'으로도 불린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개인 기부금 비율은 1.67%에 달하는 데 비해 우리는 0.54%에 불과하다. 기부에 인색한 풍토 탓도 있지만 세금 포탈과 편법 증여를 막는 데 초점을 맞춘 징벌적 세제가 더 문제다. 주식의 5% 이상을 공익재단 등에 기부하면 최고 60%까지 증여세를 부과하는 세법 아래에선 활발한 기부를 기대하기 어렵다. 세제 악용은 경계해야겠으나 역기능이 없도록 뜯어고쳐야 한다. 이참에 기부금 소득공제도 확대할 만하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