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회사를 다닌 사람을 향해 어떻게 '죽여라'고 하겠나. 그건 인간적인 도리가 아니다. "

민주당 지도부의 한 핵심 관계자는 1일 금품 제공 의혹을 받고 있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거취와 관련해 이렇게 속내를 털어놨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다. 같은 야권에 몸 담고 있는 처지에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물러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논지다.

곽 교육감이 선거 후 경쟁 후보였던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원을 건넨 사실을 인정한 직후의 반응과는 사뭇 다르다. 당 지도부는 지난달 29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사실상 곽 교육감의 사퇴를 촉구하며 파문 확산 차단에 나섰다. 손학규 대표는 "곽 교육감 사건은 대단히 충격적이고 유감"이라며 책임 있는 처신을 주문했다. 스스로 사퇴하라는 요구였다. 차기 당권 주자인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실정법 위반인 만큼 조속히 거취를 밝히라"고 곽 교육감을 압박했다.

그런 민주당 지도부가 곽 교육감 거취에 대해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곽 교육감을 옹호하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전병헌 의원은 "조급한 사퇴 압박으로 목욕물 버리려다 아이까지 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며 당 지도부의 곽 교육감 사퇴 요구에 반기를 들었다. 김진애 의원도 "트위터를 통해 확인한 민심은 곽 교육감을 근거 없이 내치면 선거에서 민주당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이었다"고 거들었다.

현재 당내엔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검찰의 수사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선거법 관련 공소시효가 작년 12월로 끝났고 이와 관련,무죄 판결을 받은 전례도 있다고 일부 당직자들은 주장한다.

민주당의 태도선회 이유는 간단하다. 표 논리가 자리하고 있다. 곽 교육감이 사퇴를 거부,버티면서 이에 동조하는 진보세력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곽 교육감의 사퇴를 요구했다가 진보세력이 등을 돌리는 등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정치적 계산이 작용한 것이다.

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당이 사퇴를 요구하지 못하는 건 표 때문"이라고 했다. 당장 곽 교육감을 지지하는 눈 앞의 일부 진보세력을 의식한 것이다. "선의로 2억원을 줬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대다수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것일까.

허란 정치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