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 감수한 1등업체 '농심·동서식품' 왜?
'비즈니스 세계에 영원한 1등은 없다'는 말이 입증됐다.

30일 라면업계 1위인 농심은 '신라면 블랙'의 생산중단을 선언했다. 인스턴트커피 시장 1위인 동서식품은 프림제품에 '카제인나트륨'을 빼기로 결정했다. 두 업체 모두 업계 2~3위 업체들에게 밀려 내린 결정이었다.

농심은 '신라면'의 후속 제품으로 내놓은 '신라면블랙'의 생산을 다음 달부터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제품을 내놓은지 4개월만의 결정이다.

신라면블랙은 출시 첫 달 매출 90억원을 기록하는 등 호조를 보였지만 최근 들어 매출이 급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한 달 매출이 20억원에도 미치지 못해 결국 마진 감소를 이유로 생산을 중단했다. 특히나 개당 1600원의 소비자가격을 1450원으로 내렸음에도 판매는 부진했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소비자들의 요구를 외면한 데에 따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신라면블랙은 출시 초반 ''신라면'을 리뉴얼해 편법 가격인상을 했다', '나트륨 함량이 높아 건강에 좋지 않다'는 등의 소비자 반응이 있었다.
그럼에도 신라면블랙은 고가 정책을 고수했고 결국 매출부진으로 생산중단까지 이르게 됐다. 1등 업체인 농심은 '프리미엄', '고급'만을 내세우고 고가정책을 펼쳤지만 이는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반면 업계 꼴찌인 한국야쿠르트는 신품 '꼬꼬면'을 출시하면서 라면업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별다른 광고 없이 입소문만으로 출시 한 달만에 8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현재 꼬꼬면 생산을 위한 공장을 증설중이며 광고도 계획하고 있는 상태다.

1등 업체임에도 제품의 스팩을 바꾼 동서식품도 있다. 동서식품이 대표적인 커피 크리머 제품인 '프리마'에서 카제인나트륨을 빼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신 천연카제인을 넣기로 했다.

'카제인나트륨'이 논란이 된 시점은 지난해 12월이었다. 커피믹스 시장에 진출한 남양유업은 '카제인나트륨을 뺐다'고 광고했고 1등 업체인 동서식품은 이에 반발했다. 올해 2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이 광고문구가 카제인나트륨이 들어간 타사 제품을 비방할 수 있다며 광고 중단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카제인나트륨 논란'이 불거지자 남양유업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남양유업은 커피믹스 시장에 발을 들여놓은지 6개월 만에 네슬레를 밀어내고 업계 2위로 올라섰다. 커피믹스로만 1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동서식품의 반기는 오히려 남양유업의 커피믹스를 돕는 꼴이 됐다.

업계 관계자는 "1등업체로서 자존심을 상하겠지만 대세가 그런건 어쩌겠느냐"며 "지금이라도 1등 업체들이 자만하지 않고 소비자의 요구를 잘 들어준다면 다행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농심은 신라면블랙 이후의 후속 신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한편 시장과 소비자들의 요구를 외면하다가 30여년만에 업계 2위로 밀린 경우가 있다. 바로 피죤이다. 피죤은 1978년 출시 이후부터 줄곧 업계 1위를 유지해왔지만 지난해 LG생활건강의 '샤프란'에 역전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역전은 잠시 뿐이 아니었다. LG생활건강은 2009년부터 '샤프란 5배 농축', '10배 농축' 등을 출시하는 등 새로운 제품들들 선보였다. 여기에 신 제형의 '샤프란 아로마시트'를 내놓으면서 시장점유율을 다지기 시작했다.

시장점유율의 절반을 거뜬히 넘겼던 피죤은 지난해 40%대로 떨어진데 이어 지난 6월에는 27%(AC닐슨 기준)까지 떨어졌다. 소비자들의 변화되는 기호를 외면한데다 직원들의 잦은 이직 등이 사회 문제화되면서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 업계 안팎의 평가다. 결국 장수브랜드의 대명사였던 피죤은 시장점유율이 3년 만에 3분의1 수준으로 줄어들게 됐다.

피죤은 이날 한국경제신문 본지 1면 광고에서 "피죤 임직원 일동은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투명한 기업, 품질 위주의기업이 되겠다"며 쇄신을 다짐하는 글을 싣기도 했다.

한경닷컴 김하나ㆍ강지연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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