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올여름에는 유난히 비가 많이 왔다. 우리나라도 열대지방을 닮아가 '장마'보다 '우기'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런 여름이었다. 알래스카해에도 따뜻한 바다에 사는 해파리가 나타난다고 하니 지구 생태계 변화가 놀랍기만 하다.

그럼에도 가을은 어느덧 성큼 다가와 따뜻한 햇살을 뽐낸다. 들판에서는 곡식들이 무럭무럭 익어간다. 이 모습을 보면 가을은 풍요와 결실의 계절이라는 말이 와닿는다. 가을은 1년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무리 계절이기도 하다. 화려한 빛깔로 산야를 아름답게 물들이는 단풍은 나무 1년살이의 마무리를 알리는 신호다.

계절 변화와 마찬가지로 우리네 인생도 반드시 노화를 겪게 돼 있다. 우리가 평균 60세에 은퇴하고 80세까지 산다면,그 기간에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남는 시간이 약 8만시간이라고 한다. 평균수명이 늘어나 100세까지 산다면 16만시간의 여유시간이 생긴다. 박유성 고려대 교수는 해방둥이인 1945년생 남자의 23.4%,여자의 32.3%가 100세 이상 살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은퇴 후 생활을 가을처럼 풍요롭고 아름답게 할 수 있을까? 연금 등 경제적인 준비도 중요하다. 돈 걱정에서 벗어나면 행복의 조건 중 하나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물질적으로 풍요롭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의 행복지수 순위는 26위로 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발표한 '2011년 한국 어린이 청소년 행복지수 국제 비교' 조사 결과에서도 한국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느끼는 주관적인 행복지수는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돈 벌고 경쟁에서 이기는 데 사용할 경우 일하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을 잊는 경우가 많다. 자칫하면 건강을 해치고 자기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소홀히 하기 쉽다. 그렇게 되면 가족이나 친구들과도 멀어지고 일터에서 물러날 경우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라는 생각에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베이비부머는 가정보다 일터에서 자기 인생의 대부분을 불사른 세대다. 조직을 위해 헌신하는 데 익숙하지만 가정과 자신을 돌보는 데는 서투르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다. 은퇴는 그들에게 인생을 재발견하는 기회를 줄 수도 있다. 은퇴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며 불안감을 갖지 말고 일터에 있을 때 차분히 준비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오늘부터라도 백지를 꺼내 들고 현재 관심이 있는 활동,과거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그만둔 활동,해보려고 생각은 했지만 아직 하지 못한 활동들을 하나씩 정리해보자.그러다 보면 막연했던 것이 조금씩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모습으로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하나씩 열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만덕 < 미래에셋생명 사장 mdha426@miraeasse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