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7시25분 무렵 이건희 삼성 회장이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으로 들어섰다. 매주 두 차례 정례 출근을 시작한 4월21일 이후 가장 이른 시간이었다. 상당수 삼성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이었고,그룹 미래전략실 직원들 가운데서도 회사에 도착하지 않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이 회장은 "구글이 모토로라 휴대폰사업을 인수하는 등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급격한 시장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긴 했지만,별다른 언급없이 집무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리곤 오전 내내 업무보고를 받고 그룹 여성 임원들과 오찬을 같이한 뒤 오후 1시께 퇴근했다.

삼성 측에선 이 회장의 '이른 출근'을 놓고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초동 안팎에서는 이런저런 뒷얘기가 나왔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소용돌이에 휘말린 데다 그룹 전반의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이라 현안을 직접 챙기고자 이른 출근에 나섰을 것"이라는 말이 있었고,"여름 휴가도 마무리돼 가는 만큼 조직에 긴장감을 다시 불어넣으려는 포석을 깔았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이 회장이 이른 출근길에 나선 이날 금융시장은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의 더블딥(짧은 경기 회복 후 재침체) 우려로 여전히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룹 경영을 둘러싼 환경도 안갯속이다. 구글은 125억달러에 모토로라를 인수키로 했다. 세계 최대 PC 메이커인 휴렛팩커드(HP)는 태블릿PC 사업을 포기,소프트웨어 업체로 변신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앞서 애플은 미국과 유럽에서 삼성을 상대로 특허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캐나다 통신장비 업체인 노텔의 특허를 사들였다. 삼성전자가 만드는 부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일본 샤프에 10억달러를 투자한다는 말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런 와중에 모바일기기에 밀린 PC 수요 감소의 영향으로 반도체 가격은 떨어지고 있고,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은 9%대에 머물러 있다.

한 관계자는 "생각이 복잡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어쩌면 새벽에 잠에서 깨 직원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한참을 기다린 끝에 출근한 게 7시25분이었을 수 있다"고도 했다. "당분간 이 회장의 조기 출근이 계속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얘기다.

정인설 산업부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