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매니지먼트] 그렉 필립스, 癌 이겨내고 '지프 인생' 사는 '엉클 CEO'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그렉 필립스 크라이슬러코리아 사장 - 美8군 시절 신중현에 매료된 '87% 한국인'
"김치찌개는 내가 최고"
1973년부터 한국서 살다시피…사무실엔 신중현·최지우 사진
김치찌개 가장 맛있고 잘 끓여
나는 매니저 아닌 리더
관리하기보다는 능력 키워줘야…주말엔 직원들 불러 맥주파티
"직원들이 삼촌이라 불러요"
"김치찌개는 내가 최고"
1973년부터 한국서 살다시피…사무실엔 신중현·최지우 사진
김치찌개 가장 맛있고 잘 끓여
나는 매니저 아닌 리더
관리하기보다는 능력 키워줘야…주말엔 직원들 불러 맥주파티
"직원들이 삼촌이라 불러요"
1974년 어느날 서울 용산 미8군 클럽.금발에 파란눈의 미군 하사가 신들린 듯한 손놀림으로 기타를 치는 한국인을 넋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기타리스트는 한국 록음악의 대부로 통하는 신중현.단숨에 신중현에게 매료된 뉴욕 출신 청년의 한국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37년이 지난 후 이 청년은 한국인 여성과 결혼하고 강남에 직장을 둔 한남동 주민이 돼 있다. 그렉 필립스 크라이슬러코리아 사장(57)의 이야기다.
◆"나는 87% 한국인"
서울 강남 파이낸스센터 14층의 33㎡(10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에는 백선엽 장군과 맥아더 장군이 손을 맞잡은 그림이 걸려 있다. 필립스 사장이 두 사람 중 '나의 영웅(my hero)'이라고 부르는 이는 맥아더가 아닌 백 장군이다. "내 삶의 터전이 된 한국을 지켜줘 아내를 만날 수 있게 해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른쪽 벽에는 신중현의 친필 사인이 적힌 브로마이드가 걸려 있다. 지난해 7월 세계적인 기타 브랜드 '펜더(Fender)'사가 전 세계 기타 거장들에게 특별히 제작한 기타를 헌정하고,기념 공연했을 때 사진이다. 에릭 클랩턴과 제프 백,딕 대일 등과 함께 기타를 받은 신중현은 공연으로 화답했고,필립스 사장은 아내와 함께 공연장을 찾아가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췄다. 관운장 나무조각상과 같은 동양 전통 조각들과 탤런트 최지우 사진 등도 그의 사무실에서 볼 수 있다. 필립스 사장과 부인은 한국 전통 문화와 앤티크 가구의 열렬한 팬이다. 한남동 자택은 백제 금동 대향로의 모조품 모델부터 태국,중국 등 아시아 각국의 앤티크 가구와 장식품들로 작은 가구 박물관 같은 느낌을 준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도 김치찌개를 꼽고 누구보다 맛있게 끓일 수 있다고 자부한다.
필립스 사장이 '베스트 프렌드'라고 부르는 아내 김민정 씨도 주한미군 시절 만났다. 1987년 이태원의 한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마주친 김씨를 몇 개월 후 미국부대에서 다시 만났다. 당시 김씨는 오디오 회사인 보스(BOSE) 영업사원이었다. 운명이라고 느낀 필립스 사장은 데이트를 신청했고 2년에 걸친 열애 끝에 1989년 결혼했다.
한국에서 많은 것을 얻은 필립스 사장은 자신을 '87% 한국인'이라고 부른다. 2006년 한국닛산 사장으로 부임한 그를 부하직원들이 '50% 한국인'이라고 부른 이후 조금씩 점수가 올라가 87점까지 이른 것.물론 부족한 부분은 언어다. 필립스 사장은 웬만한 한국말은 다 알아듣지만,말하기가 서툴러 아직 90점은 넘지 못한단다.
◆한 · 미 · 일 '3국通'
필립스 사장은 기업인 이전에 군에서 26년을 보냈다. 1972년 군에 입대,1973년 한강 이남지역 낙하산 침투 훈련에 참여하면서 한국과 연을 맺었다. 군에 근무하면서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심리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다. 1980년대 초 미 2사단 항공단에서 UH60 헬리콥터 비행사로 근무했고,1980년대 중반부터 1989년까지 특수전 사령부에 근무하면서 88올림픽 경호 업무도 담당했다. 1991~1993년 한미 연합사령부 국장을 거치며 한 · 미 협력 및 합작 투자 등의 업무를 맡았다. 그는 1997년 대령으로 예편할 때까지 총 26년간의 군 생활 중,절반이 넘는 14년을 한국에서 근무했다.
물론 이 같은 경력은 그가 한국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좋은 밑거름이 됐다. 그는 1997년 대우자동차 미국법인 동남 8개주 영업 총괄 매니저로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2002년 혼다 아메리카 딜러 개발담당을 거쳐 2003년에는 닛산 북미법인 시카고 총괄 책임자를 역임하며 커리어를 쌓아 갔다.
2006년 한국 닛산의 대표이사로 부임하며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삶이 본격 시작됐다. 그는 국내 시장에 닛산과 프리미엄 브랜드 인피니티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켜 '마케팅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미국인이면서 오랜 한국 생활 경험을 갖고 있고,일본계 자동차 업체에 몸담은 덕에 한 · 미 · 일 3국의 자동차 산업을 두루 이해할 수 있는 담다른 경쟁력을 갖게 됐다.
◆수평적 리더십 '그렉 삼촌'
필립스 사장은 '헬스광'이다. 올해 57세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지만,강남 파이낸스센터 지하의 피트니스클럽에서 주 3~4회 운동을 한다. 40대 부장이 멋모르고 함께 갔다가 '힘들다'고 울먹일 정도의 '하드 트레이닝'이다. 역기는 한창 때는 355파운드(161㎏)까지 들었고,지금도 250파운드(113㎏)는 거뜬하다. 골프는 치지만 스코어는 세지 않는다. 친구들과 즐기기 위해서 칠 뿐 비즈니스 목적은 아니다. 반바지 입고,시가를 물고,맥주를 마시며 왁자지껄 떠들며 채를 휘두르는데 스코어가 잘 나올 리 만무하다.
낙천주의는 그의 경영 스타일에서도 읽을 수 있다. 직원들과 함께 어울리고 서열을 따지지 않는 수평적인 경영을 추구한다. 사장실도 늘 열려 있어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있고 어떤 직원은 한 시간씩 잡혀서 수다를 떨기도 한다. 정장보다는 청바지와 하얀색 폴로 셔츠를 더 좋아하고 사장실에서는 종종 신중현 음악이 흘러나온다. 사석에서 직원들은 그를 '엉클 필립스'라고 부를 정도다.
그는 항상 "매니저와 리더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매니저는 말 그대로 사람을 관리하는 것이고,리더는 직원들이 최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리드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요즘도 주말이면 직원들과 맥주를 마시고 한남동 집으로 초대하기도 한다.
그런 낙천주의자에게 올초 큰 시련이 닥쳤다. 의사인 친구로부터 "귀가 이상하다"는 말을 듣고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피부암 선고를 받은 것.피부가 얇은 귀에 암이 발견돼 심각하다는 진단에 필립스 사장과 아내,두 아들은 오열했다. 다행히 정밀검사 후 귀만 수술하면 된다는 얘기를 듣고 귀의 30%를 떼어냈다. 치료는 지난 5월까지 이어졌고 다른 곳으로 전이되지 않았다는 진단서를 받고서야 안도했다. 그는 "지금은 '그렉 반 고흐'라는 별명이 하나 더 생겼다"며 "귀를 가리기 위해 머리를 기르고 있다"고 말했다.
암을 이겨내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기업인으로서도 또 한번의 모멘텀을 맞이했다. 지난 6월 크라이슬러코리아 사장에 취임한 것.크라이슬러는 올 들어 '올 뉴 300C'와 '지프 그랜드 체로키 60주년 기념 모델' 등 새로운 모델을 연달아 출시하며 국내 수입차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내년 5월에는 크라이슬러의 모기업인 이탈리아 피아트의 대표 모델인 '500'을 국내 시장에 론칭시켜야 한다. 수입차 업계에서 '마케팅의 달인'으로 통하는 그가 새로운 미션들을 어떻게 수행해 낼지 주목된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나는 87% 한국인"
서울 강남 파이낸스센터 14층의 33㎡(10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에는 백선엽 장군과 맥아더 장군이 손을 맞잡은 그림이 걸려 있다. 필립스 사장이 두 사람 중 '나의 영웅(my hero)'이라고 부르는 이는 맥아더가 아닌 백 장군이다. "내 삶의 터전이 된 한국을 지켜줘 아내를 만날 수 있게 해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른쪽 벽에는 신중현의 친필 사인이 적힌 브로마이드가 걸려 있다. 지난해 7월 세계적인 기타 브랜드 '펜더(Fender)'사가 전 세계 기타 거장들에게 특별히 제작한 기타를 헌정하고,기념 공연했을 때 사진이다. 에릭 클랩턴과 제프 백,딕 대일 등과 함께 기타를 받은 신중현은 공연으로 화답했고,필립스 사장은 아내와 함께 공연장을 찾아가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췄다. 관운장 나무조각상과 같은 동양 전통 조각들과 탤런트 최지우 사진 등도 그의 사무실에서 볼 수 있다. 필립스 사장과 부인은 한국 전통 문화와 앤티크 가구의 열렬한 팬이다. 한남동 자택은 백제 금동 대향로의 모조품 모델부터 태국,중국 등 아시아 각국의 앤티크 가구와 장식품들로 작은 가구 박물관 같은 느낌을 준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도 김치찌개를 꼽고 누구보다 맛있게 끓일 수 있다고 자부한다.
필립스 사장이 '베스트 프렌드'라고 부르는 아내 김민정 씨도 주한미군 시절 만났다. 1987년 이태원의 한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마주친 김씨를 몇 개월 후 미국부대에서 다시 만났다. 당시 김씨는 오디오 회사인 보스(BOSE) 영업사원이었다. 운명이라고 느낀 필립스 사장은 데이트를 신청했고 2년에 걸친 열애 끝에 1989년 결혼했다.
한국에서 많은 것을 얻은 필립스 사장은 자신을 '87% 한국인'이라고 부른다. 2006년 한국닛산 사장으로 부임한 그를 부하직원들이 '50% 한국인'이라고 부른 이후 조금씩 점수가 올라가 87점까지 이른 것.물론 부족한 부분은 언어다. 필립스 사장은 웬만한 한국말은 다 알아듣지만,말하기가 서툴러 아직 90점은 넘지 못한단다.
◆한 · 미 · 일 '3국通'
필립스 사장은 기업인 이전에 군에서 26년을 보냈다. 1972년 군에 입대,1973년 한강 이남지역 낙하산 침투 훈련에 참여하면서 한국과 연을 맺었다. 군에 근무하면서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심리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다. 1980년대 초 미 2사단 항공단에서 UH60 헬리콥터 비행사로 근무했고,1980년대 중반부터 1989년까지 특수전 사령부에 근무하면서 88올림픽 경호 업무도 담당했다. 1991~1993년 한미 연합사령부 국장을 거치며 한 · 미 협력 및 합작 투자 등의 업무를 맡았다. 그는 1997년 대령으로 예편할 때까지 총 26년간의 군 생활 중,절반이 넘는 14년을 한국에서 근무했다.
물론 이 같은 경력은 그가 한국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좋은 밑거름이 됐다. 그는 1997년 대우자동차 미국법인 동남 8개주 영업 총괄 매니저로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2002년 혼다 아메리카 딜러 개발담당을 거쳐 2003년에는 닛산 북미법인 시카고 총괄 책임자를 역임하며 커리어를 쌓아 갔다.
2006년 한국 닛산의 대표이사로 부임하며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삶이 본격 시작됐다. 그는 국내 시장에 닛산과 프리미엄 브랜드 인피니티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켜 '마케팅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미국인이면서 오랜 한국 생활 경험을 갖고 있고,일본계 자동차 업체에 몸담은 덕에 한 · 미 · 일 3국의 자동차 산업을 두루 이해할 수 있는 담다른 경쟁력을 갖게 됐다.
◆수평적 리더십 '그렉 삼촌'
필립스 사장은 '헬스광'이다. 올해 57세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지만,강남 파이낸스센터 지하의 피트니스클럽에서 주 3~4회 운동을 한다. 40대 부장이 멋모르고 함께 갔다가 '힘들다'고 울먹일 정도의 '하드 트레이닝'이다. 역기는 한창 때는 355파운드(161㎏)까지 들었고,지금도 250파운드(113㎏)는 거뜬하다. 골프는 치지만 스코어는 세지 않는다. 친구들과 즐기기 위해서 칠 뿐 비즈니스 목적은 아니다. 반바지 입고,시가를 물고,맥주를 마시며 왁자지껄 떠들며 채를 휘두르는데 스코어가 잘 나올 리 만무하다.
낙천주의는 그의 경영 스타일에서도 읽을 수 있다. 직원들과 함께 어울리고 서열을 따지지 않는 수평적인 경영을 추구한다. 사장실도 늘 열려 있어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있고 어떤 직원은 한 시간씩 잡혀서 수다를 떨기도 한다. 정장보다는 청바지와 하얀색 폴로 셔츠를 더 좋아하고 사장실에서는 종종 신중현 음악이 흘러나온다. 사석에서 직원들은 그를 '엉클 필립스'라고 부를 정도다.
그는 항상 "매니저와 리더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매니저는 말 그대로 사람을 관리하는 것이고,리더는 직원들이 최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리드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요즘도 주말이면 직원들과 맥주를 마시고 한남동 집으로 초대하기도 한다.
그런 낙천주의자에게 올초 큰 시련이 닥쳤다. 의사인 친구로부터 "귀가 이상하다"는 말을 듣고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피부암 선고를 받은 것.피부가 얇은 귀에 암이 발견돼 심각하다는 진단에 필립스 사장과 아내,두 아들은 오열했다. 다행히 정밀검사 후 귀만 수술하면 된다는 얘기를 듣고 귀의 30%를 떼어냈다. 치료는 지난 5월까지 이어졌고 다른 곳으로 전이되지 않았다는 진단서를 받고서야 안도했다. 그는 "지금은 '그렉 반 고흐'라는 별명이 하나 더 생겼다"며 "귀를 가리기 위해 머리를 기르고 있다"고 말했다.
암을 이겨내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기업인으로서도 또 한번의 모멘텀을 맞이했다. 지난 6월 크라이슬러코리아 사장에 취임한 것.크라이슬러는 올 들어 '올 뉴 300C'와 '지프 그랜드 체로키 60주년 기념 모델' 등 새로운 모델을 연달아 출시하며 국내 수입차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내년 5월에는 크라이슬러의 모기업인 이탈리아 피아트의 대표 모델인 '500'을 국내 시장에 론칭시켜야 한다. 수입차 업계에서 '마케팅의 달인'으로 통하는 그가 새로운 미션들을 어떻게 수행해 낼지 주목된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