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세계경제 불안, 중국 역할이 관건이다
신용평가사 S&P의 미국 장기국채 신용등급 강등이 불을 지핀 세계 경제의 불안이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 유럽 경제까지 흔들리는 판이라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고성장 엔진의 힘으로 미국 국채를 꾸준히 사들여 백기사 노릇을 했던 중국이 이번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중국도 제 코가 석 자라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가까운 수출이 불안하고,이미 1조2000억달러에 이르는 중국 보유의 미국 국채 가격 동향이 문제고,다시 들썩이는 부동산 가격과 물가고 속에 거품경제가 언제 꺼질까 조마조마하다.

미국은 1990년대 이래 전 세계에 파생상품으로 부풀려진 금융 자산을 확산시켰다. 중국에서는 값싼 노동력과 다국적 기업이 결합돼 상품을 쏟아냈다. 미국과 유럽이 빚을 내 파티를 즐기는 동안 중국은 넘치는 돈을 부동산 개발과 공장 건설에 쏟아부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에는 각국이 경쟁적으로 '양적 완화'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번 돈 잔치를 벌였다. 이번 위기는 금융과 산업경제의 부조화가 빚어낸 지구경제 전체의 문제다. 미국이 저물고 중국은 떠오르는 식이 아니다.

이 와중에 중국의 행보 몇 가지가 눈에 띈다. 지난 10일 중국은 첫 항공모함이 될 바랴그호 시험 운항에 성공했다. 지난 17일에는 홍콩에서 200억 위안 규모의 위안화 국채를 발행했다. 겉모습은 위안화 국제화 촉진이나, 3조20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지닌 중국 국채가 미국 국채보다 더 안전하다는 자신감 표출이다. 중국은 국력 과시에 더 신경 쓰는 눈치다. 세계경제가 몸살을 넘어 탈진 상태에 빠진 지금 G2(주요 2개국) 대국으로서 중국이 정말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우선 외환관리의 자유화다. 보유 외환을 활용한 석유나 광물자원 비축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만 올리는 일은 무모하다. 답은 '시장에 외화를 돌려주는 일'이다. 일본은 기업을 포함한 민간이 75%의 외환을 움직인다. 중국은 국가외환관리국이 국내 외환의 4분의 3을 관리한다. 시중에 위안화가 과도하게 풀릴 땐 이를 흡수하기 위해 재정 부담을 높인다. 정책 리스크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민간 영역의 외환 보유 비중이 커지면 환율 절상 압력도 완화된다. 유동성과 경상수지 흑자도 줄일 수 있다.

다음은 내수 확대를 위한 노동시장 제도개혁이다. 최저임금 상향 조정이나 평균임금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 동남부지역의 노동력 부족은 주로 25세 미만의 저임금 여공 부족 현상이다. 기숙사 확충 등의 부대비용 증가를 기피하는 영세 수출 기업은 저임금 노동력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11시간 이상의 초과 근무를 요구한다. 실업으로 귀향하는 농민공과 노동력 부족이 공존하는 이유다.

독점 대기업 임금의 빠른 상승에 1억5000만명에 달하는 농민공의 현실이 파묻혀서는 곤란하다. 농민 소득의 절반은 이들이 외지에서 벌어 송금하는 돈이다. 선심성 세비 감면만으로 소비 주도형 성장은 불가능하다. 2010년 18만건에 달했던 저소득층 시위도 그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치개혁이다. 중국경제가 진정한 세계경제의 축으로 나가는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의 관료 자본주의다. 그 동안 관주도형 개발 투자에 의존해 고성장을 거듭해 온 중국경제는 거품과 공급 과잉의 위험에 처해 있다. 문제는 소비 영역 역시 관주도형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소비의 많은 부분이 아직 공공 영역의 지출에 연관돼 있다. 중국의 거시경제 정책이 효율적이지 못한 이유다.

정치와 경제의 고리를 끊는 유일한 길은 정치개혁을 통한 권력의 견제이다. 이는 배부른 서구식 민주화 주장이 아니다. 국력과시보다는 위에 언급한 세 가지 일을 서두르는 것이 중국과 세계경제가 더불어 안정될 수 있는 첩경이다.

오승렬 < 한국외국어대 중국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