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증시, 마켓리더에게 길을 묻다③]이원기 "차·화·정, 시장 리더십 상실했다"
"올해 시장은 코스피지수 2000선 아래에서 등락을 거듭하는 변동성 장세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외풍(外風)에 크게 흔들리는 현재 주식 시장의 취약점을 보완해 나간다면 국내 증시는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원기 PCA자산운용 대표이사(52·사진)는 17일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외국인의 무차별적 매도 공세로 폭락장을 경험한 국내 증시를 이같이 진단했다.

이 대표는 지난 2002년부터 국내 증시의 대세 상승을 새로운 시각과 논리로 전망해 시장에선 대표적인 강세론자로 통한다. 특히 뱅커스트러스트 동방페레그린 등 외국계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를 거쳐 2001년 메릴린치 서울지점 리서치본부장을 역임한 '외국통'으로 외국인 투자자로부터 높은 지명도를 확보한 전략가로 평가받고 있다.

◆ "외풍에 취약한 구조적 문제 해결돼야"

이 대표는 "이미 국내 증시가 외풍에 취약하다는 점은 여러 차례 경험을 통해 드러난 사실"이라면서도 "선진 시장 진입을 위해서는 이제 이런 부분이 개선돼야 투자자들이 더욱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수급의 안전성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것.

그는 "최근 폭락장에서 외국인이 순매도 기조를 유지하면서 팔아치운 주식은 외국인 전체 보유 물량 중 1~2%에 불과했으나 국내 증시에 미치는 영향력은 공포스러운 수준이었다"며 "영미계 자본의 회수에 취약한 구조적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국내 시장에서 외국인은 30% 정도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만 대부분 대형주 위주의 우량 기업들이라 만약 외국인이 작정하고 20~30% 정도의 국내 보유 지분을 처분하기라도 한다면 현재 취약한 수급 구조에서 국내 증시의 바닥은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란 판단이다. 이런 불안 요소가 시장의 안정성을 저해하고 투자자 이탈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외국인이 시장을 계속해서 좌지우지하는 구조가 이어진다면 기업의 가치로만 판단하는 분석이나 전망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며 "투자자들의 장기적인 투자 유치를 위해서도 국내 수급 주체의 힘을 길러 자본 시장을 선진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 유동성 장세 예상은 결국 오판

이 대표는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넘으면 개인의 증시 참여가 활발해지고 시중의 과잉 유동성이 증시로 몰려 화려한 유동성 장세가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개인의 투자 여력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통계적으로 개인 금융자산이 많다는 것과 증시에 들어올 자금이 많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며 "우리나라 중산층은 가계 부채가 위험한 규모로 증가하고 있고, 부동산이나 높은 사교육비 지출 등으로 투자 여력에 공백이 생긴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대세 상승 시기에는 이런 문제들이 드러나지 않을 수 있지만 시장이 불안해지고 구조적 문제에 노출되면 큰 문제로 다가 오는 법"이라면서 "구조적 개선을 통해 자본 시장을 통째로 재정비하지 않으면 불안한 시장 구조는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울러 그는 "불과 몇 년 사이 크게 번졌던 해외투자 펀드에서의 손실이 아직도 여전한 상태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펀드를 비롯한 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부족한 점도 크다"고 덧붙였다.

◆ 다양한 기관 투자자 육성 시급

이 대표는 "최근 3년 사이 국내 증시는 지속적인 상승 흐름을 이어오면서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언제든지 주식을 털고 떠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며 "국내 증시의 유동성 회수가 상대적으로 쉬워 외국인 이탈이 가속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이 단기간 크게 상승하면서 재정 위기 등 자금 여력이 부족해진 영미계 외국인이 주식을 처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다"며 "결국 시장 안정화를 위해선 국내 수급 주체들의 역량을 키워 시장의 키를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시장 성숙을 위해서 다양한 국내 기관 투자자의 육성과 개인 투자자들의 주식 보유에 대한 문화적 성숙도를 끌어올려야 앞으로 국내 시장의 신뢰도를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외 변수로 시장이 크게 흔들리는 상황에서 외국인이 처분하는 주식을 국내 투자자들이 받아낼 수 있는 여력과 시장 신뢰가 수반돼야 한다는 것.

그는 시장 수급의 대안 주체로 헤지펀드가 될 수 있다고 밝혔으나 현재 국내 증시 상황에서는 헤지펀드가 정착하기 힘들 것이란 견해를 내비쳤다.

이 대표는 "최근 폭락장에서 감독당국이 공매도 제한 조치를 한시적으로 하는 방법을 내놨다"면서 "이는 헤지펀드 도입을 앞두고 감독당국이 국내 시장의 취약점을 시인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헤지펀드의 매력은 튼실한 시장 내에서의 자유로운 운용"이라며 "국내 증시의 경우에는 대외적으로 조금이라도 불안한 상황이 벌어지면 외국인은 팔고 떠나는 불안한 시장이라 헤지펀드가 도입될 수 있는 적절한 시점으로 볼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차·화·정, 시장 리더십 상실"…대안은?

그는 올해 증시는 2000선 아래에서 상승폭과 하락폭이 제한되는 박스권 장세가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면서 단기적으로 낙폭과대주가 하락폭을 축소하는 모습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대표는 "경험론적으로 시장이 큰 폭의 하락장을 경험한 이후에는 주도주의 사이클이 바뀌는 경향이 크다"면서 "기존 주도주였던 자동차, 화학, 정유업종 등은 시장 리더십을 상실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반사적으로 내수주와 중소형주, 과거에 소외받았던 금융주 등이 관심을 받을 것이란 예상이다.

그는 "국내 시장은 외국인에게 휘둘리는 구조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터무니없이 비싸거나 가격이 싼 상태라고 볼 수 없다"며 "향후 1~2년 동안 시장의 취약한 구조적인 약점을 보완해 나간다면 국내 증시는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난 10년동안 세상이 끝날 것 같던 폭락장은 9.11테러,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이미 수차례 있어 왔다"면서 "결국 시장에서 살아남은 투자자는 의연하게 대처한 투자자였던 만큼 악재들이 증대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뚝심을 갖고 시장을 지켜보자"고 당부했다.

한경닷컴 최성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