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 "거부반응 없는 '돼지 췌도' 집중 연구…당뇨병 환자들의 꿈이죠"
안규리 서울대 의대 신장내과 교수(56)가 최근 이종 췌도 이식 시 발생하는 면역거부반응을 조절할 수 있는 '췌도이식용 형질전환 복제돼지' 생산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임상에 돌입하려면 아직 멀었지만,악성 당뇨병이나 말기 신장병으로 투석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에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예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팀에 몸담았던 그는 2005년 '줄기세포 조작 사건' 파문 이후 잠행을 거듭하다가 이번 연구성과를 계기로 다시 대중 앞에 나타났다.

가난한 사람을 무료 진료하는 데 앞장서왔던 그의 인생은 줄기세포 파문 이후 굴곡을 탔다. 난치병 환자를 낫게 해주고 싶던 안 교수의 꿈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순식간에 '대국민 사기극'으로 매도돼 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최근 서울 혜화동 서울대 병원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잔잔한 미소와 낮은 목소리로 지난 일에 대한 소회를 털어놨다. 안 교수는 "누구의 책임 유무를 떠나 제가 속한 연구팀의 기술에 많은 희망을 걸었던 모든 분들에게 사죄하는 심정으로 연구하고 있다"며 "그것만이 사회에 보답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주력분야인 이종장기이식 관련 기술을 설명할 땐 신념이 가득한 '과학자'의 모습을 보였다.

▼이번 논문의 주요 성과는 무엇입니까.

"신장병 환자가 다른 사람의 장기를 이식받아도 면역거부 반응 때문에 평생 면역 억제제를 복용해야 합니다. 하물며 돼지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면 어떻겠어요. 이번에 생산한 돼지는 이종췌도 이식 시 가장 문제되는 염증매개물질인 TNF-α를 차단하는 sTNFRI-Fc 융합단백질을 장기 주변으로 계속 내뿜는 돼지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에게 이식할 때 발생 가능한 염증 반응을 상당 부분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

▼외부 장기가 들어올 때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건 어쩌면 당연하지 않나요.

"장기이식 시 급성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중요 유전자인 '알파갈' 제거 돼지는 이미 해외에서 만들었어요. 알파갈 제거 돼지는 면역 조절이 대체로 되기 때문에 해외에서는 주요 거부반응인 항면역 · 항염증 · 항응고 반응 중에서 항응고에 연구를 집중했습니다. 우리 연구진은 주요 거부반응을 동시에 조절할 수 있는 유전자들이 들어간 '다중 형질전환 돼지'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최소한의 면역억제제를 쓸 수 있는 다중 형질전환 돼지가 그렇지 않은 돼지보다 인체 장기이식에 나은 것은 자명하니까요. "

▼왜 췌장이식 대신 이종(돼지) 췌도를 택했습니까.

"췌도가 장기로 갈 수 있는 기반기술입니다. 장기를 이식하려면 영장류와 함께 많은 돼지를 안전하게 키우는 큰 사육시설이 필요한데 그런 인프라가 제겐 없어요. 췌장이 효소공장인데,뇌사자들이 생기면 여기가 가장 먼저 녹아요. 또 동종 췌도 이식을 하려면 뇌사자 2~3명이 필요합니다. 결국 당뇨병으로 눈이 멀거나 신경이 망가지는 합병증을 막으려면 이종 췌도이식이 효과적입니다. 이 점에 대해선 전 세계 과학자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

▼국내 유전공학 수준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세계적인 수준인 건 분명해요. 그런데 각 부문에선 엄청난 과학자들이 많지만 의사의 관점에서 볼 때는 실용적인 대목에서 융합이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아닙니까. 전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과학을 안 했을 겁니다. 차라리 가난한 나라에 밴드나 약을 더 갖다 주는 게 낫죠."

▼황우석 전 교수팀 합류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기준 전 서울대 총장님이 무료 의료활동을 격려한다고 2003년 관저에 절 부르셨어요. 거기에 황 전 교수님이 있었습니다. 한창 영롱이 등 복제 기술이 각광받던 때였어요. 사람이 어딜 가서 누굴 만나고,그 다음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 건 운명인 것 같아요. 특별하게 강한 의지를 갖고 사는 게 아닌 이상 말이죠.한창 바이오가 커야 할 시기에 그런 일이 생겨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

▼체세포 핵이식 기술과 안 교수의 전공 분야인 면역학과 관련이 있습니까.

"2003년부터 이종장기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장기이식 테크놀로지의 한복판에 배아줄기세포가 있었습니다. 돼지 난자에서 핵을 빼내고 형질 전환을 한 미니돼지의 체세포를 집어넣어 돼지를 만드는 것이니까요. 형질전환 클로닝(cloning · 무성복제기술)을 다수 개발해 영장류 실험과정을 거쳐 세계보건기구(WHO) 스탠더드에 맞는 우리 장기이식 기술을 확보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사건 이후로 저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몸이 망가졌을 때 배터리처럼 바꿔 넣어 삶의 질을 높이는 게 재생의학이고,재생의학은 세포수준에서는 배아줄기세포,장기수준에서는 이종장기 이식인데 저는 장기 쪽에만 집중할 생각입니다. "

▼검증이 없었던 사회분위기도 문제가 많았죠.증인으로 법정에 설 때 차분한 태도가 화제였습니다.

"검증이라기보다는 바이오가 갖다주는 환상이 부채질을 했다고 봅니다. 외국에선 과학적 기만(scientific fraud)을 심사할 때 연구소를 1년씩이나 닫고 그걸 누가 지시했는지,수행했는지,알고도 은폐했는지,몰랐는지를 판단해요. 당시에는 그런 걸 구별할 능력이 없었다고 봅니다. 그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저도 세상과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게 됐던 것 같아요. 감시가 없으면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법정에서는 진실만을 얘기하면 되는 거니까 긴장은 안 했어요. 희망을 걸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과학으로 말해야 했죠.그래서 이번 발표도 실제로 돼지 형질이 검증될 때까지 1년간 기다렸습니다. "

▼무료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1997년 고 김수환 추기경님하고 함께 시작했어요. 2006년 초 2개월 정직 기간 동안 마음을 달래려 인도 오리사주에 갔었습니다. 모 대기업이 현지 공장을 짓는데 주변 의료환경을 점검하는 차원에서요. 그런데 사람들 사는 게 그렇게 끔찍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개인적으로 힘들던 마음이 사라지더라고요. 1회성 진료가 아니라 현지 의료인에게 직접 의술을 전수해야겠다는 생각에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라파엘 인터내셔널 클리닉'을 만들었습니다. "

▼최고 인재들이 의대로 몰리고 있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굉장히 창의적이고 우수해 잘 가르쳐야 한다는 무한 책임을 느껴요. 다만 실패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는 정도는 예전 세대들보다 더 큰 것 같습니다. 레지던트는 엄격하게 관리합니다. 한번의 의료사고로 모든 게 끝날 수 있으니까요. 밤을 꼬박 새워도 저절로 시술할 수 있어야 환자가 다치지 않습니다. 반면 과학연구는 너무 타이트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학생들을 관리하고 있어요. "

▼주말도 쉬는 일이 없다면서요.

"토요일엔 연구하고,일요일은 라파엘 클리닉에 갑니다. 그냥 환자를 돌보고 학생들과 함께 지내는 의사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저에게 과학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해야 할 숙제인 것 같아요. 그게 제 인생을 도와주고 기대를 걸었다가 마음의 상처를 입은 많은 분들에 대한 보답이니까요. 진심을 갖고 환자를 돌보고,학생들을 가르치고,돼지 연구를 하는 게 제가 할 도리인 것 같습니다. "


◆ 안규리 교수, 면역학·장기이식 권위자…서울대 제1회 사회봉사상

1955년생으로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내과학으로 석 · 박사학위를 땄다. 면역학이 전공분야이며 미국 신시내티의대 병원 전임의,미 스크립스연구소 연구원,서울대병원 임상강사 등을 거쳐 1998년부터 신장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서울대병원 장기이식센터장, 공공보건의료사업단 부단장, 면역학 교실 주임교수, 라파엘클리닉 상임이사,대한이식학회 학술이사 등을 함께 맡고 있다.

오랜 국내외 무료 진료활동을 인정받아 지난 5월 에'서울대 제 1회 사회봉사상'을, 2009년에 몽골 최고 교육훈장 등을 받았다. 안 교수는 매년 휴가 때마다 몽골 폴리네시아 등 오지로 날아가 의료봉사에 나선다. 오는 10월엔 공공보건의료사업단과 함께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한다. 국내 중화학공업의 토대를 놓은 화학자이자 1950년대 상공부 장관을 지낸 고 안동혁 박사가 선친,안효영 아세아연합신학대 교수(57)가 언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