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청준씨의 어머니는 궁핍한 살림에 홀몸이었지만 꿋꿋하게 아들을 키웠다. 외지 고등학교를 보내던 시절 학비 대느라 집까지 팔았으면서도 그 사실을 아들에게 숨겼을 정도다. 그런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다. 어느 설날 찾아갔더니 아들 이름도 잊은 채 "손님 오셨구마,우리집엔 빈방도 많으니께 편히 쉬었다 가시요"라 했다. 이씨의 얘기를 듣고 정진규 시인이 쓴 시 '눈물'에선 치매를 '어떤 빈틈도 행간도 없는 완벽한 감옥'이라 했다.

두 다리를 못 쓰는 임영자 씨가 치매로 기억을 잃은 70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가 작년 우정사업본부 편지쓰기 대회 대상을 받았다. ' 40년 만에 처음으로 글을 드립니다. 이 딸이 한평생 걸을 수 없듯이 당신 또한 잃어버린 기억을 영원히 되찾을 수 없다는 현실이 너무도 서럽고 서럽습니다. ' 눈물 젖은 편지엔 20년간 딸을 업어 키우면서 안해본 장사가 없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가득하다. '하늘은 나를 평생 걷지 못하는 장애인으로 태어나게 하신 대신 어머니라는 이름의 수호천사를 보내주셨습니다….몇 개월에 한번쯤 가족을 알아보시면 천금만금을 얻은 것보다 더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

치매를 예감한 당사자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다.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은 83세에 치매임을 알고 흐트러지는 생각을 추스르며 국민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지금 내 인생의 황혼으로 가는 긴 여행을 떠나려 합니다….'부인 낸시는 남편과 더이상 대화할 수 없는 상황을 두고 "길고 긴 이별"이라 했다. '벤허'의 배우 찰턴 헤스턴은 "기억이 남아 있을 때 작별하고 싶다"며 비디오테이프로 기자회견을 했다.

몸이 멀쩡한 병 치고는 너무 가혹한 게 치매다. 낫는다는 기약 없이 자꾸 낯선 행동을 하는 부모를 보는 자식의 가슴은 시퍼렇게 멍이 든다. 식사 목욕 청소 빨래 등 수발은 전쟁과 다름없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돈과 인내를 바닥내기 일쑤다. 급속한 고령화 탓에 치매환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우리나라도 벌써 50만명이란다. 가족을 포함해 200여만명이 '볼모'로 잡혀 있다는 얘기다.

치매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치매관리법'이 그제 공포됐다. 예방과 검진 치료 의료지원 연구조사 등에 정부가 나서게 된다. 가족에게만 맡길 수 없다는 현실을 감안한 조치다. 고령화시대 치매와의 길고 긴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