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소개되는 한국 만화의 90%가 제 손을 거쳐갑니다. 10년 동안 번역한 만화만 200권이 넘어요. "

지난 15일 KOTRA의 한국 만화 수출홍보대사로 위촉된 미르야 말레츠키 씨(독일 · 33 · 사진)는 26일 이같이 말했다. 한국 만화의 세계 시장 진출을 홍보할 적임자로 선택된 그는 방송 프로그램 '미수다(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해 얼굴이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미르야씨는 자신이 번역한 만화를 테이블에 펼쳐 보이며 능숙한 한국말로 소개했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 현재 국내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는 '프리스트(priest)',10년 전 한국 시장에 나왔지만 국내 팬이 거들떠보지 않아 폐기처분 직전에 미르야씨의 번역으로 독일과 미국,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로 대박을 터뜨린 '마왕일기'와 후속작 '천사일기' 등등.

"만화 번역은 보물 찾기와 같아요. 한국인 정서에 맞지 않아 절판 위기에 몰린 작품도 유럽 시장에선 먹히는 의외의 작품들이 많아요. 그래서 만화 번역은 모국어로 하는 게 가장 정확하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미르야씨는 독일어 외에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한국어 일본어 등 5개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지만 디테일한 어감 차이까지 전달할 수 있는 모국어(독일어) 번역에만 치중한다고 털어놨다.

만화를 번역하게 된 계기를 묻자 그는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인 것 같다"고 짧게 답했다.

"199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갔어요. 그냥 홈스테이가 아니라 아기도 봐주고 설거지도 하고,그걸 '오페어(au-pair)'라고 해요. 숙식을 공짜로 하면서 용돈도 버는 거죠.근데 두 달 만에 그 집 부부가 이혼을 했어요. 귀국하기 전 평소 알고 지내던 독일인 교수 한 분이 한국어를 배우라고 했어요. 4년 뒤면 한국 경제가 엄청나게 좋아져 할일이 많을 것이라는 거예요. "

그는 1999년 함부르크대에 입학해 일본어를 전공하면서 부전공으로 한국어를 선택했다. 2000년 3월 한국외국어대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다시 찾았다. 2002년 한 · 일 월드컵 때 독일방송 등 취재진의 통역 일을 하다 귀국하는 길에 들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인생을 바꿔놨다.

"도서전 한쪽에 자리잡은 한국 만화에 눈길이 가더라고요. 한국인 출판사 편집장에게 만화 번역하는 과정을 물었죠.이거다 싶더라고요. 그 길로 독일 본대 한국어번역학과에 입학한 뒤 한국과 독일을 오가면서 번역 일과 공부를 함께 하다 2006년 한국에 정착했죠."

그가 만화 한 권을 번역하고 받는 돈은 100만원.하루 만에 번역하기도 하지만 1주일 걸리는 까다로운 작업도 종종 있다고 한다. 대학이나 기업체 강연도 나가고 방송일도 함께 하고 있다.

"떼돈을 번 걸로 아는데 그게 아니에요. 독일 함부르크에 부모님이 사실 맨션 하나를 사드린 게 전부예요. 버는 돈 대부분을 부모님께 보내요. 아버지가 얼마 전 암에 걸리셨고 어머니도 몸이 상당히 좋지 않아요. 제가 무남독녀라 어쩔 수 없어요. "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