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이 늙으신 어머니를 고향에 두고 홀로 대관령 고개를 넘어 서울로 가며 쓴 시 '사친(思親)'에서 영감을 받아 지은 곡이 '만남'입니다. 시골 장터의 풍경과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마음을 경쾌하게 담아낸 곡이 '타령'이고요. 정명화 예술감독께서 대관령국제음악제 개막공연으로 이 두 곡을 선택해주신 건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지요. "

독일 브레멘 국립음대 교수이자 현대음악 작곡가로 유럽에서 더 잘 알려진 박파안영희 씨(66 · 사진)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오는 28일 개막하는 제8회 대관령국제음악제 개막공연에서 그의 작품 '타령Ⅵ'와 '만남'이 차례로 무대에 오른다. 그의 예명 파안(琶案)은 1978년 도올 김용옥 교수가 작명한 이름.'책상에 놓여진 비파를 보며 생각한다'는 작곡가 본연의 작업을 뜻하면서 '파안대소'의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다.

"어릴 적 충북 청주에서 아버지와 손잡고 장터에 나가 듣던 시장터의 판소리와 굿,민요와 창은 지금도 작곡의 원천이 됩니다. 열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우연히 피아노를 배웠죠.종이 피아노를 만들어 늘 갖고 다니며 아무 데서나 펼쳐놓고 연습하곤 했습니다. "

1945년 청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음대와 동대학원 작곡과를 졸업한 그는 1974년 독일학술교류재단(DAAD) 장학생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1977년 클라리넷과 현악 3중주를 위한 '만남'으로 스위스 보스빌에서 열린 국제작곡가세미나에서 1등상을 받았다. 1979년 파리 유네스코 주최 작곡 콩쿠르에서 1등상을 받는 등 전 유럽에서 열린 작곡 콩쿠르를 휩쓸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에겐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다. 1980년 도나우에슁겐음악제에서는 여성 작곡가 최초로 그의 관현악곡 '소리'가 위촉됐다. 1994년 브레멘 국립음대 정교수가 된 직후 부총장직을 맡을 때도 그랬다. 그때까지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 등 전 독일어권을 통틀어 여자가 교수 시험을 통과해 채용된 사례는 없었다.

지난 37년간 그의 주 활동무대는 유럽이었지만 작곡한 60여곡의 음악 중 90% 이상은 한글 제목으로 되어 있다. 그는 "애국자라서가 아니라 그 나라의 말은 모든 인간의 정서를 이야기하고 민족의 영혼을 담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말 자체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그의 음악은 웅대하면서도 소박함을 지녔다. 편안하면서도 소리에 귀기울이게 하는 묘한 긴장감도 갖는다. 첼로,바이올린,클라리넷 등 서양 악기는 물론 나무토막,다듬이 방망이 등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도구들이 다채롭게 쓰인다. 그의 작품 '타령Ⅵ'는 28일 저녁,'만남'은 29일 저녁 대관령 알펜시아에서 연주될 예정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