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경영진이 유상증자 청약에 들어온 돈을 들고 튀는 초유의 사태는 소액공모제도가 가진 허점을 철저히 악용한 것이란 평가다.

소액공모는 은행이나 증시를 통한 정상적인 방식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운 기업에 숨통을 터주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증자 대금 횡령한 초유의 사태

코스닥 한계기업을 중심으로 경영진의 내부자금 횡령은 자주 있지만 이번처럼 회삿돈이 아닌 공모로 모집한 돈을 들고 달아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자본시장의 안정성을 흔들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하다.

이번 사건은 네프로아이티 대주주인 네프로재팬이 횡령 사실을 공시하면서 알려졌다. 네프로아니티는 지난 5일 경영권 양수도 계약을 맺은 홍콩계 회사인 만다린웨스트의 박태경 부사장이 유상증자 청약증거금 149억원을 횡령했다고 공시했다.

현재 경영권이 완전히 이전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책임 소재 등 문제가 복잡하다. 두 회사는 9월30일자로 경영권을 양수도하기로 하고 내달 25일 주주총회를 열어 만다린웨스트 측 인사를 경영진에 선임할 예정이었다.

이번 소액공모는 기존 최대주주가 아닌 만다린웨스트 측이 진행했다. 기존 경영진은 만다린웨스트 측의 횡령을 감지하고 회사 은행 계좌로 들어온 149억원 중 80억원을 지급정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외국회사인 점도 파장을 키우고 있다. 네프로아이티는 2009년 상장된 일본회사여서'중국 디스카운트'에 이어 외국 상장사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많다.

거래소는 횡령 발생을 사유로 이날 네프로아이티의 거래를 정지시키고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피해를 입은 한 투자자는 "청약증거금을 횡령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고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는 상황"이라며 한숨지었다.

◆소액공모제도 허점 파고든 사기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하기까지 의심스런 정황이 너무 많다"며 "소액공모제도의 허점을 파고든 사기성 사건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소액공모제도는 10억원 미만의 소규모 공모 시 금융당국의 허가 없이 간단한 서류 제출만으로 자금을 모을 수 있도록 허용한 제도다. 정상적인 유상증자는 금융감독원에 증권신고서를 내고 심사를 통과한 뒤 주관 증권사의 주도 아래 진행되지만 소액공모는 회사가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절차다.

소액공모 직전에 금감원 전자공시 시스템(다트)에 간단한 서류만 제출하면 되기 때문에 공모 당일 오전에 신고하고 오후에 공모를 진행하기도 한다. 공모과정을 회사가 진행하기 때문에 위험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통상 소액공모는 한계기업들이 하기 때문에 간신히 10억원을 채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실시된 소액공모 중 70%는 목표액 10억원을 채우지 못했고,30% 정도는 10억원을 넘겼지만 간신히 1억~2억원을 초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네프로아이티의 이번 공모가 14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한 데는 새 주인의 등장이 호재가 됐다.

이번 기회에 허술한 소액공모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uy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