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이 부채의 폭풍 속에서 피난처를 찾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금,스위스프랑,독일 국채 등 안전자산 가격이 급등하는 배경엔 글로벌 채무위기가 있다. 진원지는 미국과 유럽이다. 미국에서 정부 부채한도 증액 협상이 난항을 겪는 데다 그리스 재정적자 위기가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핵심 국가들로까지 전염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금 선물 가격은 10일 연속 오르며 31년 만에 최장기 랠리를 기록했다. 스위스프랑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통화"(블룸버그통신)로 떠올랐다. 10년물 독일 국채 금리는 지난해 11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올랐다. 상품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는 "원자재와 통화를 매수하고,미국 은행 주식과 국채를 매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자산 판도 변화 조짐

18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금 8월물 가격은 온스당 1602.4달러로 사상 치고치를 경신했다. 은 9월물 가격도 4거래일 연속 상승하며 온스당 40.34달러에 거래됐다.

국제 외환시장에서 안전자산으로 꼽혀온 스위스프랑 가치는 유로당 1.153스위스프랑으로 올 들어서만 7.5%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엔화 역시 달러당 79.04엔에 거래되며 도호쿠(東北) 대지진 이후 주요 7개국(G7)이 엔화를 절하하기 직전 수준을 회복했다. 노르웨이 크로네,싱가포르달러,호주달러도 안전 통화로 꼽히며 강세를 보이고 있다. 유로존 내 유일한 안전자산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독일 국채에도 돈이 몰렸다. 10년물 독일 국채 금리는 8개월래 최저 수준인 연 2.65%를 기록했다.

반면 그동안 안전자산으로 꼽혀왔던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연 2.92%로 낮은 수준을 유지했지만 달러 자산에 대한 투자 매력은 떨어지고 있다. 빌 이건 JP모건 펀드매니저는 "위험회피 자산으로서 미 국채 역할이 의심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미국 정부 부채한도 증액 협상 시한이 가까워지면서 투자자들이 30년물 미 국채 등 장기채를 대거 팔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지난 5월 달러화 표시 자산에 대한 외국인의 순매수액도 236억달러 수준으로 전달에 비해 22.8% 감소했다. 안전자산 판도에 변화가 일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배경이다.

◆금값 10년 내 5000달러 전망도

안전자산 랠리의 지속 여부는 이번주가 고비가 될 전망이다. 미국과 유럽의 재정적자 대책의 윤곽이 이번주 안에 드러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의 재정적자 감축 규모와 방식을 두고 백악관과 공화당의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 피치 등 국제신용평가사들은 돌아가면서 AAA인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할 수 있다고 재차 경고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21일 긴급 정상회의에서 그리스 추가 구제금융 방안을 논의할 방침이지만 독일과 유럽중앙은행이 민간 채권단의 고통 분담 방식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 타결책이 나올지 불투명하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선 시장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면서 당분간 안전자산 쏠림 현상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옹이롱 필립스선물 연구원은 "연말 금값은 온스당 1650~1700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닥터 둠'으로 불리는 마크 파버는 "금값은 향후 5~10년간 지속적으로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중국과 인도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금값은 2014년에 온스당 2000달러,2020년에는 500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강유현 기자 y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