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프랑스를 대표하는 안무가 롤랑 프티가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프티는 카바레를 운영하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즐기는 분위기 속에서 살다 간 인물이다. 작품도 깊이 대신 번뜩이는 감각으로 가득하다. 그렇지만 겨우 22세에 발표한 출세작 '젊은이와 죽음'(1946)은 다르다. 고민하는 청년,그를 조롱하는 팜파탈,절망감에 목을 매는 남자,그 죽음과 대비되는 파리의 휘황찬란한 밤 풍경이 그려졌다.

원래 프티는 가벼운 재즈에 맞춘 작품을 구상했으나 아이디어를 제공한 대문호 장 콕토가 강력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초연 며칠 전에야 바흐의 '파사칼리아와 푸가'로 음악을 바꾸었다. 바흐가 30대에 쓴 오르간 곡인데 발레에서는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연주되기도 한다. 여기서 파사칼리아란 바로크 시대의 변주곡이요,푸가는 복잡한 대위법을 가리킨다.

곡이 워낙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탄탄한 구조와 압도적인 음향을 제공하기에 프티의 출세작은 천재 안무가의 감각과 깊이가 겸비된 걸작으로 간주됐다. 테일러 핵포드의 영화 '백야'(1985)는 '젊은이와 죽음'을 압축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경이로운 춤으로 시작된다.

유형종 < 음악 · 무용 칼럼니스트 · 무지크바움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