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소금'으로 불리는 화학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학부에서 화학 전공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으며 기업에서도 이분야 연구 · 개발(R&D) 인력을 늘리는 추세다. 태양전지 · 차세대 반도체 등 전자소재 산업뿐 아니라 바이오 산업 · 환경공학 등 소위 '뜨는' 분야들이 모두 화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UN이 정한 '세계화학의 해'이자 퀴리 부인이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대학 · 기업에서 수요 많아져

국내 대표적인 과학기술대인 KAIST 공대에서는 최근 생명화학공학과가 가장 인기있는 과로 부상했다. 신소재 · 에너지 · 바이오 등 미래 응용기술에 특화된 커리큘럼을 갖춰 인기가 높다는 평가다. 1학년 학부생들의 전공선택 시 지원자 수는 2007년 39명에서 지난해 87명으로 높아졌다. 박오옥 KAIST 생명화공과 교수(대구경북과학기술원 부총장)는 "4~5년 전만 해도 지원자가 미미했지만 현재는 선호도가 굉장히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건국대 화학과의 정시모집 경쟁률은 2010년도 8.29 대 1 에서 2011년도 9.26 대 1 로 높아졌으며,인하대 생명화공학부의 정시 · 수시 포함 경쟁률은 2010년도 9.9 대 1 에서 2011년도 15 대 1로 치솟았다. 연세대 화학과와 화공생명학부의 정시모집 경쟁률 역시 2010년도에 각각 3.08 대 1,3.93 대 1 에서 2011년도 3.93 대 1,7 대 1 로 높아졌다. 대기업 계열사인 S사는 2008년부터 3년간 화학 관련 전공 순수 R&D 인력을 25명 늘렸으며,올해 역시 15명을 추가 채용할 계획이다.

S사 공정개발팀 관계자는 "소재 쪽 연구가 많아져 인력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마땅한 고급인력을 찾기가 쉽지 않아 고민"이라고 말했다.

◆체계적 인력 양성 긴요

미래를 열어젖힐 신기술은 모두 화학에 기반해 있다. 생명현상의 근본을 조금씩 벗겨가고 있는 RNA의 기본 성질을 밝혀낸 과학자들에겐 노벨 생리의학상이 아니라 노벨 화학상이 수여됐다.

DNA에서 RNA로 이어지는 생물의 미세구조에 대한 이해는 유전공학(genetic engineering)의 본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전자의 특정 부위를 '자르고 붙이는' 유전자변형 · 재조합을 하려면 세포 이하 특정 부분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정확히 알아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장용근 KAIST 생명화공과 교수는 "이런 분야를 '생화학' 이라고 부르며 날이 갈수록 학계와 업계의 화두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꿈의 신소재'라고 불리는 그래핀,풀러렌 등 노벨 물리 · 화학상 분야를 넘나들며 계속 새로운 성질이 밝혀지고 있는 탄소 동소체에 대한 연구도 화학의 몫이다. 유기화학 · 전자공학 · 제약산업에 통틀어 쓰이는 탄소원자 결합 기법을 발견한 과학자들에게는 지난해 노벨 화학상이 수여됐다.

첨단 전자공학이나 물리학의 성과 같지만 사실 화학이 기저에 깔려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도 인력 수요가 늘어나는 이유다. 리튬이온 배터리나 연료전지의 효율을 높이고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은 '촉매'이며 이는 화학의 대표적인 연구분야다. 실리콘 기반 태양전지의 대안으로 부상 중인 화합물반도체 태양전지 역시 갈륨(Ga) 인(P) 인듐(In) 비소(As) 게르마늄(Ge) 등 3-5족 원소를 어떻게 쌓는지(stacking)에 따라 에너지 효율과 성능이 결정된다. 바이오매스 등 에너지 관련 환경공학도 결국 화학에서 비롯된다.

이동구 화학연 신화학실용화센터장은 "국가핵심산업에서 제품혁신은 언제나 화학의 몫"이라며 "불황 속에서도 굳건히 경제 기반을 유지하는 일본의 저력은 사실 세계 최강의 화학분야 R&D에서 나오며,한국도 전향적인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