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 · 합병(MA)에 강한 SK와 STX그룹이 하이닉스반도체를 놓고 맞붙었다. SK텔레콤과 ㈜STX는 8일 "미래 성장과 글로벌 사업 기회를 발굴하기 위해 인수에 나서기로 했다"며 의향서를 냈다. 현대중공업이 막판 포기하면서 한때 불투명해졌던 세 번째 하이닉스 주인 찾기 작업이 성사될지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SK그룹은 장고 끝에 승부수를 던졌다. 에너지와 통신을 넘어선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를 강조해온 최태원 회장이 3년여의 고민 끝에 반도체를 선택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2008년 채권단이 매각 추진을 선언했을 때부터 SK그룹은 관심의 초점이었다. 최 회장 등 그룹 수뇌부가 수차례 "반도체 사업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하며 부인했지만 시장에선 SK와 하이닉스의 시너지에 주목했다. SK에 비해 한발 앞서 있다고 평가됐던 LG와 현대중공업이 발을 뺀 지금,SK는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로 평가받고 있다.

최 회장의 승부수는 올 들어 곳곳에서 감지됐다. 올초 "급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기회를 잡기 위해 프레임(틀)을 바꿔 먼 미래로 가자"며 "새로 시작되는 10년 동안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그림의 프레임을 바꿔 무엇을 담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0년 유공(현 SK이노베이션) 인수와 1997년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 계열 편입 이후 10년 이상 이어져온 그룹 양대 축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임을 내비친 언급이었다. 에너지와 통신으로 이뤄졌던 프레임에 반도체를 넣으려는 구상이었던 셈이다.

지난해 말 신사업 전략을 총괄할 그룹 부회장단이 출범하면서 하이닉스 인수 추진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SK텔레콤 대표에서 옮겨온 정만원 부회장이 앞장섰다. 동력자원부 통상산업부 등에서 17년 동안 공직 생활을 한 정 부회장은 통신 산업이 내수와 음성통화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탈피하려면 통신서비스 외의 다른 분야에 진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부회장단에 합류한 뒤 최 회장과 이 같은 생각을 공유했다.

회사 관계자는 "약 2년 전부터 하이닉스 인수가 내수 중심의 한계에서 탈피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스마트폰 보급이 확대되고 통신시장이 크게 변화한 것도 하이닉스 인수 필요성에 힘을 실었다. 하성민 SK텔레콤 사장도 시장 변화에 따른 새로운 도전의 필요성을 최 회장에게 설명했다.

반도체 산업의 높은 진입장벽에 더해 세계 2위 업체라는 하이닉스의 위상과 기술력도 매력을 더했다.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이 PC를 대체할 만큼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하이닉스의 반도체 기술과 제조 능력을 확보하는 것은 향후 SK텔레콤이 스마트폰 시장뿐 아니라 통신산업 전체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재희/임원기 기자 joyj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