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에게는 삶을 무디게 만드는 것들과 싸우는 능력이 있지요. 이미 짜여진 원고를 읽어가듯 개성을 잃어버린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

서울 신사동 갤러리 현대에서 개인전을 갖기 위해 7일 한국을 찾은 미국 화가 딜리아 브라운(43)은 "예술가들은 어른이 돼서도 아이와 같은 자유를 가지고 있어 진실을 추구하는 힘도 크다"고 말했다.

브라운은 영화 속의 장면을 재현해 사진으로 찍은 후 캔버스에 옮겨내는 작가다. 미국 화단에서 영화가 다루는 인간의 욕망과 환상,권력과 위선의 관계를 회화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내달 7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행복과 변덕-완결편'.프랑스 영화감독 클로드 샤브롤의 1968년 작품 '레 비슈'(Les Biches · 암사슴들)의 장면을 새롭게 각색해 캔버스에 옮긴 40여점을 건다. '레 비슈'는 유복한 상속녀 컬렉터와 화가의 관계를 통해 우리 사회의 위선과 진실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1960년대 파리 분위기를 뉴욕으로 옮겨 연출한 겁니다. 촬영을 위해 뉴욕과 햄프턴에서 장소를 구하는 데만 꼬박 2년이 걸렸어요. "

연기자 지망생이었던 홀리스 위더스푼이라는 젊은 여성을 캐스팅해 작품 속 장면들을 연출하면서 영화의 주인공들이 느꼈을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냈다.

브라운은 그만큼 작품 속 상황을 실제로 체험하는 것을 중요한 과정으로 꼽는다.

그는 부유한 컬렉터의 집을 빌려 파티나 일상적인 장면을 재현하고 그 경험을 회화로 옮긴다. 이 같은 작업은 일종의 판타지(환상)를 실행하면서 동시에 파괴하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저는 '나홀로 집에'라는 판타지를 실행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어요. 그 집들은 저보다 훨씬 부유한 사람들의 것이었죠.집주인이 저를 침입하도록 허락해주는 일은 권력에 대한 이슈들을 충분히 표면화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

그는 "제가 아닌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알고 싶었다"며 "우리 사회의 진실과 위선의 경계를 넘나들며 회화 작업을 통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구현해 낸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을 등장시켜 겉으로 소비되는 이미지의 이면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첼시 그린-2개의 자화상' 시리즈는 화려한 레드 카펫에서 작가와 유명인들이 파파라치 앞에 포즈를 취하는 장면을 그린 것.'살롱 스타일 자화상' 시리즈도 화장품을 활용해 현대 여성의 모습을 잡아냈다.

"제가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온갖 종잡을 수 없는 특성들이 끈기 있고 사려 깊은 관람객에게만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파티를 즐기다가 떠나는 한 사람이 방을 나서기 직전에 하는 윙크와도 같은 거죠."

그는 "현대사회의 권력을 보여주는 과정을 통해 관람객에게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02)519-08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