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는 1950년대 미국에서 대두됐다. 자유시장도 중요하지만 시장을 가능케 해준 사회에 대한 경제적 법적 윤리적 그리고 자선적 책임을 어느 정도 떠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거셌다.

대표적 사례가 하나 있다. 1952년 미국 스미스사의 주주들은 경영진이 프린스턴대에 기부한 장학금이 회사 이익 창출과는 아무 연관이 없다며 주주에 돌아갈 몫을 낭비한 것이니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기업도 어느 정도의 사회적 책임이 있다면서 경영진의 손을 들어줬다. 이를 계기로 소비자 단체의 운동은 더욱 가열됐다.

물론 반대 목소리도 컸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프리드먼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최고의 수익을 내는 것이다. 때문에 기업에게 사회적 운운하는 것은 자유시장 근본 원리와 상반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레이건 대통령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어디까지나 기업의 자율적인 자선행위를 의미할 뿐 이를 강요할 법조항은 없다"며 기업은 사회문제를 해결할 전문가가 아니며,이는 정부의 몫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명하게 하면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이익도 커질 수 있다는 사례가 사방에 퍼지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좋은 예가 하나 있다. 캐나다 토론토에선 송년 밤에 파티에 가는 젊은이들을 위해 지하철을 무료로 제공해왔으나 예산 부족으로 한 해는 무료 승차를 중단하기로 했다. 이에 젊은이들의 실망이 컸던 차에 현지의 Coors 맥주회사가 송년파티에 들떠있는 젊은이들을 위해 지하철 요금 전부를 대신 부담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사실은 TV에 크게 보도됐고 캐나다 교통부 장관의 감사편지도 신문에 실렸다. 이 바람에 젊은이들 사이에서 Coors 의 브랜드 가치는 하늘을 찔렀고 이로써 Coors 는 본전을 뽑고도 몇 배가 넘는 순이익을 냈다.

최근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서 한 후보가 "재벌들은 자기 가족만 챙기니 중소기업이 힘들다" 고 말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는 보도를 접했다. 청와대는 "정치권의 표현이 다소 지나치지만 대기업 편을 들 생각도 없다"는 애매한 입장을 보였다.

그렇지만 전경련 회장이 포퓰리즘을 우려하는 발언을 했다고 해서 국회의원이 들고일어나 전경련 회장을 국회에 소환해서 따지자는 경솔한 발언을 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회는 기업인들을 불러다가 창피를 주는 권력기관이 아니다. 한국 대기업들이 그동안 낸 놀라운 성과에는 찬사를 보내야 한다. 5대양 6대주 어느 곳에서나 Made-in-Korea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렇게 힘들게 달성한 경제적 성과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을 자율에 맡겼지만 이제는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영역이 됐다. 미국에서는 거래 조건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 관련 실적을 요청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Coors의 예에서 보듯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없어지고 오히려 브랜드 가치를 올리고 수익도 올리는 일석이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김창준 < 전 미국 연방하원의원·한국경제신문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