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속보]사실혼 관계의 두 남녀 사이에서 인공수정을 통해 태어난 아이의 경우,부모가 원하지 않더라도 친자관계가 성립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3일 서울가정법원에 따르면 치과병원에서 일하던 A(39·여)씨는 명문대생 B(30·남)씨를 2001년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났다.이들은 2003년부터 2008년 말까지 같이 살았고,A씨는 B씨와 만나며 한 번의 임신중절 수술,두 번의 자연유산을 겪었다.

그러던 B씨는 2008년 인터넷 채팅으로 C씨를 알게돼 교제를 시작했고,A씨에게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하니 당분간 고향에 내려가 있으라”고 한 뒤 연락을 끊었다.C씨는 B씨의 여동생으로 가장해 수차례 “가족들이 힘들어 하니 오빠와 헤어져달라”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2009년 A씨는 “아기가 생기면 결혼을 반대하던 부모님도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며 B씨에게 정자를 제공해 달라고 부탁했다.B씨는 A씨에게 ‘정자 증여 이후 모든 일들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는 취지의 각서를 작성하게 한 뒤 3번 정자를 기증했다.

2009년 3월 A씨는 인공수정을 통해 네 쌍둥이를 임신한 뒤 선택유산을 거쳐 두 아들을 낳았지만,B씨는 그 과정에서 아무 도움도 주지 않았다.A씨는 그 동안 B씨의 ‘여동생’이라며 자신을 찾아와 이별을 요구한 C씨가 여자친구였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됐다.

속은 것을 알게 된 A씨는 두 아이가 B씨의 친자임을 확인하고 양육비와 사실혼 관계를 파탄 낸 위자료 등을 지급하라며 지난해 법원에 소송을 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3부(부장판사 박종택)는 “피고는 본인이 정자를 정자은행에 기증한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아들들조차 스스로 포기할 수 없는 인지청구권을 타인이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며 “두 사람이 사실혼 관계였고,정자제공자도 B씨임이 분명한 점에 비춰 아이들이 B씨의 친자임을 인정한다”고 판시했다.이어 “아이들이 성인이 될때까지 1인당 매달 50만원의 양육비를 내고,사실혼 관계 파탄의 주 책임이 피고에게 있으므로 35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