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다. 일본에서 더위와의 사투가 시작됐다. 폭염으로 최근 며칠 새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자 일본 정부가 '전력사용제한령'이라는 카드를 빼들었다. 공장 등 대규모 전력 수요처에 15% 절전을 의무화하는 조치다. 기업들은 그동안 준비해온 절전대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시작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이미 예견된 일이다. 평일에 공장 문을 닫거나 자체적으로 서머타임을 실시하는 곳도 늘었다. 일본은 지금 어느 해보다 힘든 여름을 보내고 있다.

◆전력 사용량 15%씩 무조건 줄여라

일본 정부는 1일부터 도쿄전력과 도호쿠(東北)전력 관할 지역에 있는 대규모 전력 소비처에 전력사용제한령을 발동한다. 해당 지역은 도쿄를 포함한 수도권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전력이 부족해진 미야기현 이와테현 후쿠시마현 등이다. 이 지역에 있는 공장 등은 평소 전력 사용량의 15%를 의무적으로 줄여야 한다.

일본에서 전력사용제한령이 발동되는 것은 제1차 석유위기가 있었던 1974년 이후 37년 만이다. 대지진과 쓰나미로 원자력발전소 가동이 대거 중단되면서 전력 공급이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도쿄지역의 최고 기온이 섭씨 35도까지 올랐던 지난 29일 도쿄전력 관내의 전력 수요는 최고 4570만㎾로 최대 공급능력(4900만㎾)의 93%에 달했다. 도쿄전력은 화력발전소 복구 등을 통해 7월 말까지 전력 공급능력을 하루 5520만㎾까지 늘릴 계획이지만 그래봐야 작년 여름의 최대 전력 수요인 5700만㎾에는 미치지 못한다.

◆평일에 공장 문 닫고 휴업

기업들은 미리 짜놓았던 시나리오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동차업계는 전력 사용량이 많은 목요일과 금요일에 휴무하고 대신 토요일과 일요일에 공장을 가동하기로 했다. 혼다와 닛산 등 주요 자동차업체들의 공장은 목요일인 30일부터 문을 닫았다. '목 · 금 휴일제'는 9월까지 실시할 방침이다. 13개 자동차업체와 440개 부품업체 근로자 80여만명의 휴일이 바뀌는 셈이다.

소니 등 자체적으로 서머타임제를 도입하는 기업들도 늘었다. 아침에 일찍 출근하는 대신 오후 4~5시께 조기 퇴근하는 방식이다. 도쿄시내 유명 백화점들은 평소 오후 11시였던 폐점시간을 두세 시간씩 앞당겼다. 24시간 운영하던 프랜차이즈 음식업체들도 영업시간을 줄여나갈 방침이다.

◆일상생활도 '절전 모드'

일반인들의 생활도 팍팍해졌다. 대부분의 건물 실내 온도는 섭씨 28도 정도로 평년보다 2도 정도 올라갔다. 시원함의 대명사였던 은행도 겨우 더위를 면하는 수준이다. 은행 지점에 설치돼 있는 TV도 모두 꺼져 심심해졌다. 도쿄 거리는 예년보다 어두워졌다. 상당수 전광판의 가동이 중단됐고 쇼윈도의 조명도 낮춰졌다. 낮 시간대 전철 운행 횟수도 평소보다 최대 30%까지 줄었다.

이렇게라도 해서 해결되면 다행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예년보다 여름철 기온이 올라가 전력 사용량이 예상치를 넘어서게 되면 절전 수준을 넘어 '제한 송전' 조치가 내려질 수밖에 없다"며 "이 경우 기업 활동과 국민 생활에 큰 혼란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