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니머스(Anonymous)와 룰즈섹(LulzSec).최근 세상이 알려진 해커 그룹의 이름입니다. 두 그룹 모두 '글로벌 조직'을 표방합니다. 어나니머스의 경우 일부 멤버들이 최근 스페인 등지에서 체포되기도 했죠.전반적으로는 미국 해커들이 주도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두 해커 그룹이 요즘 전 세계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해커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공격도 하고 방어도 합니다. 편의상 불법 해킹을 일삼는 이들을 '블랙 해커',이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이들을 '화이트 해커'라고 말하지만 이런 용어는 거의 쓰질 않죠.그냥 '해커'라고 합니다. 블랙 해커든 화이트 해커든 외부에 노출되는 걸 극도로 꺼립니다. 그런데 어나니머스와 룰즈섹은 다릅니다. 트위터까지 활용합니다.

어나니머스는 지난 봄 소니가 한 해커를 제소하자 사이버 공격을 감행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실제로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가 해킹을 당해 770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고 이후에도 10여 차례 공격이 이어졌습니다. 시선이 어나니머스로 쏠리는 건 당연하겠죠.그런데 어나니머스는 자기네 소행이 아니라고 발뺌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 소행일까? 궁금하게 생각할 무렵 미국 중앙정보국(CIA) 홈페이지가 털렸습니다. 누가 감히 미국의 심장을….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이때 룰즈섹이 트위터(@LulzSec)를 통해 자기네 소행이라고 밝혔습니다. CIA뿐만 아니라 상원의원 홈페이지도 공격했고 소니 공격에도 가담했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렸습니다.

어나니머스든 룰즈섹이든 로빈후드와 같은 의적을 자처합니다. 폭압을 일삼는 정권,소비자를 무시하는 기업 등을 응징하겠다고 말합니다. 특히 어나니머스는 꽤 진지합니다. 가두시위 때 입는 검은 양복,검은 모자에 빨간 넥타이,그리고 익살스러운 가면이 의적답습니다. 두 칼 위에 가면을 놓은 상징 이미지는 섬뜩한 느낌을 줍니다.

반면 룰즈섹은 개구장이 느낌이 강합니다. 상징 이미지부터 그렇습니다. 칼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정장에 검은 모자를 쓴 애꾸눈의 사나이가 왼손으로 와인 잔을 들고 있습니다. 룰즈섹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트로이목마를 연상시키는 룰즈 보트가 있고 '룰즈는 더이상 해치지 않는다''와서 탑승하라'는 내용의 룰즈송이 나옵니다.

두 해커 집단은 트위터에서 노는 모습도 다릅니다. 룰즈섹은 CIA를 공격했다고 밝힌 뒤 갑자기 유명해졌습니다. 10만명을 밑돌았던 트위터 팔로어가 사나흘 만에 20만명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룰즈섹은 '21만1000여명 팔로어 여러분께 감사한다'느니 '1500명만 서명해주면 CIA를 다시 공격하겠다'는 트위트를 날리기도 했습니다.

어나니머스는 상대적으로 조용합니다. 트위터(@YourAnonNews) 팔로어는 7400여명.어나니머스는 지난 5월 LA시에 익명의(anonymous) 누군가가 1만달러 자기앞수표를 기부했다는 기사를 링크하면서 #Anonymous란 해시태그를 붙였습니다. 자기네가 기부했다는 뜻일까요? 어나니머스 뉴스 사이트에는 자기네와 관련된 뉴스,동영상 등을 링크해 놨습니다.

두 해커 집단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면 게임과 관련이 많습니다. 어나니머스는 소니를 위협했고 룰즈섹은 소니를 공격했다고 밝혔습니다. 룰즈섹은 일본 게임업체 세가가 공격을 당하자 "세가 게임을 좋아한다"며 대신 복수해주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한 룰즈섹 팬은 한국 업체인 넥슨을 공격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두 해커 집단의 움직임을 보면 CIA든 펜타곤이든 IMF든 가지고 논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최근 미국 정부는 사이버 보안을 대폭 강화하고 있습니다. 어느 조직이든 사이버 보안은 최고책임자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대통령과 최고경영자들이 사이버 보안에 관심을 기울여주길 간절히 바랍니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