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철 칼럼] '잃어버린 10년' 보다 못한 정부
'잃어버린 10년.' 2007년 대선에서 주목을 끈 캐치프레이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김대중 · 노무현 정부를 싸잡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공격했다. 이 구호는 일본경제의 장기 침체를 연상시킴으로써 이 후보가 내건 '성장'과 '시장' 등 전통적 보수의 가치로 유권자를 끌어모으는 마법을 발휘했다.

집권 민주당의 정동영 후보는 속절없이 당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관계 개선,노무현 정부 시절의 정치개혁 성과는 잃어버린 10년 구호 속에 파묻혔다. 결과는 대선 역사상 가장 큰 표차의 패배였다.

이 대통령의 집권이 3년을 훌쩍 넘었다. 벌써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 얘기가 나올 정도다. 과연 김대중 · 노무현 정부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거세게 비판했던 이 대통령은 새 시대를 열었는가? 내년 말 대선에서 야당의 공격을 견뎌낼 카드는 있는가?

경제외교면에선 성과를 거뒀다고 할 만하다. 한 · 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을 발진시켰고 한 · 미 FTA도 비준을 눈앞에 두고 있다. 주요 20개국(G20) 회의의 성공적 개최로 한국의 경제적 위상도 과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신속하게 극복하면서 지난해 6%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한 것도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 성적은 초라하다. 무엇보다 먹을거리를 가져다 주는 일자리 창출이 저조하기 짝이 없다.

취업자 증가폭을 보자.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간 늘어난 취업자는 39만6000명이다. 연평균 13만2000명에 불과하다. 금융위기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노무현 정부에 비하면 참담한 실적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늘어난 취업자는 126만4000명,연평균 25만2000명이다. 김대중 정부까지 갈 것도 없이 일자리 창출에선 '잃어버린 10년 정부'에 참패로 끝나가고 있다.

실질적인 고용창출 능력을 나타내는 고용률을 봐도 이명박 정부는 내세울 게 없다.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고용률은 59.5%였다. 이후 2년 연속 59%를 회복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고용률은 59%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5년간 300만개.'국민들은 정부가 내건 일자리 창출 목표를 기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버거운 목표라고 주장했지만 정부는 규제완화와 세금감면 등으로 투자활성화를 유도하면 가능하다고 공언했다. 공약은 공약(空約)이 되고 있다. 정부는 수없이 많은 대책을 내놓았지만 현실에선 통하지 않았다.

정부가 일자리의 보고라며 전문직 서비스업의 규제완화를 추진했던 것도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전문자격사의 시장진입규제나 영업행위규제를 풀기위해 몇 차례 공청회를 열었지만 이해당사자들의 집단 이기주의를 넘어서지 못했다.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대학문을 나서는 젊은이를 좌절케 하고 기존 직장에서 떨려난 중산층을 신빈곤층으로 전락시킨다. 이는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사회적 갈등의 골만 깊게 만든다. 야당이 무상복지에 매달리고 정부와 여당도 덩달아 복지확대를 앞세우는 것 역시 일자리에 목마른 계층의 고통을 외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이 내놓는 경제정책은 점점 일자리와 멀어지는 쪽으로 기울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감세인하 약속은 철회 위기를 맞고,정부의 국가고용전략회의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창업지원이나 인력 미스매치 해소도 기대이하다.

고용정책을 총괄해온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이 경제팀의 사령탑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내정됐다. 박 장관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은 그 누구보다 두텁다고 한다. 정권 끝까지 운명을 같이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관중은 9회 말 역전에 환호한다. 박 장관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고광철 논설위원 / 경제교육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