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과학벨트 수혜株'의 허상
말 많던 과학벨트의 입지가 발표됐지만 오히려 논란이 커지는 양상이다. 추가예산 덕에 혜택이 늘어났다는 데도 이곳저곳 불만의 목소리는 잦아들 줄 모른다. 다른 한편 내놓았던 부동산 매물을 재빨리 거둬들이는 발 빠른 움직임도 보인다. 이 와중에 대출을 받아서라도 '과학벨트 수혜주'를 매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어떤 글을 보면서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게다가 '과학벨트 수혜주'란 것이 '충남지역에 토지나 공장을 보유한 기업의 주식'을 의미한다고 하니 아연실색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기초과학은 호기심 충족을 추구한다. 그리고 과학벨트는 이런 기초과학의 핵심시설과 인재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심오한 우주의 기원과 수백년 묵은 수학적 난제를 탐구하는 곳이다. 수만명이 근무하는 공장이 아니기 때문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인근지역 기업의 주식이 느닷없이 상한가를 쳐야할 이유가 전혀 없다.

과학벨트는 과학기술자들의 해묵은 소원을 담은 그릇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어느 순간 과학기술자의 목소리는 사라지고,장밋빛 부동산사업 이야기들만 나돌았다. 그간 정부는 연구기관의 입을 빌려 100조원이 훌쩍 넘는 경제적 파급효과와 수십만명을 상회하는 고용파급 효과를 제시한 바 있다. 지자체장들은 과학벨트 유치 여부가 지역경제의 생사를 결정짓는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미래성장동력이니 먹을거리 창출이니 하는 개념들도 사용됐다. 결국 부동산 기획업자들만 신났다. 기초과학은 간 데 없고,토지보상과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만 덕지덕지 붙은 부동산 사업만이 남았다.

요즘 말썽 많은 부실 프로젝트 파이낸싱 사업들은 대체로 '처음 기대'와 다른 '나중 현실' 때문에 발생한 것들이다.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과학벨트도 예외가 아닐 듯하다. 엄청난 경제적 효과가 곧 생길 것처럼 이야기하던 사람들은 얼마 안 있어 다른 자리로 가고 없을 것이다. 장밋빛 개발사업의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게 될 때쯤 불행하게도 그 일을 맡은 정책당국과 지역주민,그리고 국민이 뒤처리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기초연구의 가치를 폄하하고,돈벌이 기관으로 성격을 바꾸자고 들까 걱정이다.

과학벨트는 선진국이 되기 위해 결정적으로 필요한 기초과학 역량의 산실로서,자유롭지만 치열하고 그러면서도 창의적인 탐색공간이 돼야 한다. 게다가 일본의 리켄,독일의 막스플랑크 같은 선진국 기초연구집단들의 사례에서 보듯 궤도에 오르기까지 삼사십년이 넘게 걸릴 것이다.

경제적 효과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축적된 인적 · 지적 자산으로부터 생기는 자연스러운 파급효과를 의미하는 것이다. 예산의 대부분을 국가가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렇게 눈높이를 조정하고 보면 '과학벨트 수혜주'라는 표현이 '둥근 네모'라는 말 만큼이나 형용모순에 가득찬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가시적인 경제파급 효과를 넌지시 암시하면서 사업을 추진해온 것은 정책당국의 잘못이다.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또한 초당적으로 마음을 모아도 부족할 판에 기초과학 과제를 개발사업처럼 보이도록 만든 정치권의 잘못도 제대로 고쳐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정치권은 솔직하게 기초과학이 왜 중요한지,과학벨트에서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원론대로 정정당당하게 거듭 이야기해야 한다.

정부,정치권,국민이 기초과학의 성격에 대해 공감대를 확실히 가지고 있을 때 진정 과학친화적인 지배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고,정권과 무관하게 지속적인 정부투자가 담보될 수 있다. '과학벨트 수혜주'라는 개념이 발붙일 수 없을 때 비로소 과학벨트가 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정동 < 서울대 교수 / 科技정책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