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헤지펀드 갤리언그룹 설립자인 라지 라자라트남(53)이 내부자거래 등과 관련한 검찰의 14개 기소 혐의 모두에 대해 배심원들로부터 유죄 평결을 받았다.

11일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12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라자라트남에게 적용된 9개의 증권 사기 혐의와 5개의 공모 혐의에 대해 만장일치로 유죄를 선언했다. 이 같은 평결은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활용한 주식 거래로 막대한 수익을 거둬온 월가의 행태에 철퇴를 가하려는 검찰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월가의 정보 유통 관행에 변화를 몰고 올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작용할 것이라고 CNBC는 전망했다. 라자라트남은 최장 20년의 실형을 받을 전망이다.

◆마약수사 기법으로 증권 사기 적발

라자라트남의 기소와 관련한 최대 쟁점은 검찰이 도청을 통해 확보한 테이프의 증거 채택 여부였다. 2007년 라자라트남의 내부자거래 혐의를 잡은 검찰은 2008년부터 법원의 영장을 받아 전화 통화 내용을 도청하기 시작했다. 마약 및 조직범죄 수사에서 활용해온 기법을 증권 사기 적발에 도입한 것이다. 기존의 증권 사기 수사는 주로 법원 영장을 받아 주식 거래 및 이메일 정보를 압수하는 정도였다. 3년에 걸친 도청을 통해 검찰은 내부자거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수십건의 테이프를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골드만삭스 이사였던 라자트 굽타로부터 분기 적자 및 벅셔해서웨이 투자 유치 정보 등을 사전에 빼내 주식 거래에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라자라트남이 내부거래를 활용한 주식 매매로 6380만달러의 부당 이익을 거뒀다고 밝혔다. 이 밖에 맥킨지컨설팅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했던 아닐 쿠마르가 정보 제공 대가로 라자라트남으로부터 매년 50만달러를 역외 계좌를 통해 받았다는 증언도 유죄 입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라자라트남의 내부자거래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을 내린 것은 검찰의 도청 테이프를 증거로 받아들인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검찰로서는 내부자거래의 유죄 입증이 수월해진 만큼 월가의 증권 사기 수사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프리트 버라라 연방검사는 평결 직후 성명을 통해 "자신들이 법 위에 있다고 믿거나 너무 똑똑해서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계속 수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피고 측 변호사인 존 다우드는 평결 직후 "도청 내용의 일부만을 담은 테이프를 증거로 채택해서는 안 된다"며 항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선거 공판은 오는 7월29일 열릴 예정이다.

◆ 정보 제약으로 주식거래 위축 우려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활용해 주식 매매를 하면 자칫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월가의 정보 유통 관행에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날 전망이다. 상장사들은 임직원과 증권사 애널리스트 간 정보 교류를 제한하는 등 보수적으로 정보를 관리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동안 애널리스트,펀드매니저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회사 내용을 투자자들에게 알렸다면 이제는 공시와 투자설명회(IR) 등이 주로 활용될 전망이다. 애널리스트들 입장에서는 상장사 정보를 확보하기 어려워져 투자자들에 대한 정보 서비스가 힘들어진다. 단기적으로 분석 대상 기업 수를 줄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다양한 정보 네트워크를 활용해 공격적인 투자를 해온 헤지펀드들도 수익성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기업 정보가 줄면 결과적으로 주식 매매가 감소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라자라트남은 스리랑카 출신으로 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을 졸업하고 월가에 진출해 1999년 갤리언을 설립했다. 갤리언은 고수익을 거둬 2008년엔 운용 규모 70억달러로 세계 10대 헤지펀드 중 하나로 꼽혔다.


◆ 내부자거래

기업의 주주나 임직원이 직무와 관련해 알게 된 미공개 중요 정보(내부정보)를 이용해 유가증권을 매매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들로부터 1차로 정보를 받아 주식투자를 한 사람도 내부자거래를 한 것으로 간주된다. 감독기관 종사자,공인회계사,주거래은행 임직원 등도 경우에 따라 내부자로 간주돼 단속 대상이 된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