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 회복세가 급격히 둔화되고 있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1.8%에 불과하고 공급관리자협회(ISM) 의 제조업 및 서비스 지수를 봐도 경기 확장세가 꺾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가늠자 역할을 하는 고용시장은 관련 지표들이 엇갈리게 나온 탓에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경기 회복세가 꺾이는 가운데 국제 상품 가격이 급락세로 돌아서면서 경기 불확실성이 증폭됐다.

유럽에서 은행이 처음 등장한 이후 800년 동안 66개국에서 발생했던 금융위기의 전개 과정을 분석한 '이번에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의 저자인 카르멘 라인하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 연구위원(55)은 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 회복이 예전의 경기침체 후 회복 때와는 확연히 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잠재 부채까지 합치면 미국의 공공부채가 GDP 대비 124%로,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과감한 빚 감축 노력 없이는 미국 경제 전망이 어둡다는 분석이다. 1998년 금융위기를 맞자 단기에 대외부채를 줄이고 은행 부실을 털어낸 한국의 위기 극복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미 상 · 하원 의원들이 재정문제를 다룰 때마다 자문을 구하는 라인하트 연구위원을 만나 미국 경제의 전망을 들어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낮췄습니다.

"미국의 부채와 적자 규모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입니다. 적자의 상당 규모를 외국 자본이 메워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의미 있는 적자 감축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은행 부문의 우발 채무에 대한 부담도 국가 신용등급 전망에 나쁜 영향을 주는 요인입니다. 경기가 회복되고 있는 만큼 S&P가 합당한 우려를 제기했다고 봅니다. (그동안 그는 신용평가사들이 등급 산정을 적절히 하지 못했다고 비판해 왔다)"

▼부채 문제를 제대로 다루면서 회복이 더딘 경기를 부양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부채 때문에 당장 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조정할 시간이 있습니다. 문제는 정치적 해법 마련이 지연되면서 조정할 시간이 갈수록 줄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기축통화국이 발행하는 국채(미 재무부 발행 채권) 말고는 (투자) 대안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미국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미 국채에 대한 수요가 계속 있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무척 위험합니다. 상 · 하원에서 증언할 때마다 이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역사적으로도 미국의 부채 문제는 심각한 수준입니까.

"드러나지 않은 빚이 더 문제입니다. 연방 정부의 총 부채가 GDP 대비 94%입니다. 2차대전 직후보다는 낮은 수준입니다. 일부에서는 연방 부채의 상당 규모를 다른 정부기관이나 사회보장기금에서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순 정부 부채(net government debt)로 따져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주 정부 등 지방 정부 및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등 국책모기지 회사의 부채까지 포함하면 공공부채는 124%가 됩니다. 1916년 통계를 작성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지급을 늦추거나 미래 현금 흐름을 비현실적으로 산정했다는 점에서 현재 수치만으로는 주 정부 등의 재정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이 90%를 넘으면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진다고 지적했습니다.

"1800년대 이후 44개국의 사례를 분석해 본 결과입니다. 선진국 혹은 이머징 국가에 상관없이 부채 비율이 일정 단계 이상으로 높아지면 경제 성장이 둔화된다는 통계 결과가 나왔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연구보고서를 통해 이런 사실을 뒷받침했습니다. 미국의 현재 상황은 훨씬 복잡합니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사례들은 정부 부채가 높지만 민간 부채는 낮았습니다. 미국은 정부뿐 아니라 민간 부채도 높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작년 가을 잭슨홀 미팅에 초대받은 뒤,미 기업연구소(AEI) 상임고문으로 있는 남편(빈센트 라인하트)과 금융위기 후 민간의 디레버리지 사례를 연구했습니다. 민간의 빚이 적정한 수준으로 낮아지는 데 7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계와 금융사들의 부채 감축 과정이 더 이어질 것으로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

▼미국의 과도한 부채가 고용 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쳤다고 봅니까.

"두 가지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미 주택 시장이 매우 취약합니다. 2006년 정점 이후 주택 가격이 35% 이상 하락했습니다. 주택 시장이 살아날 것이란 징후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주택 건설에서 일자리가 생기지 않고 있습니다. 또 다른 요인은 차입을 통해 집을 샀던 가계들이 자산가치 하락으로 소비를 하기 어렵게 된 것입니다. 최종 소비자의 구매력이 감소하는데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사람을 뽑을 리 없습니다. 전후 경기 후퇴시기 때마다 가계의 소비가 경기 회복을 이끌어 왔던 것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

▼금융위기 이후 소비를 즐기던 미국인들의 행태가 절약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뀌는 게 미국 경제에 바람직한 것입니까.

"지속가능하지 않은 빚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위기 이전 15년,특히 직전 6년 동안 가계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부채에 의존한 소비가 지속될 순 없습니다. 오랫동안 쌓아온 부채를 하룻밤 새 털어낼 순 없습니다. 가계의 디레버리지가 당분간 고용 및 경제 회복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2000~2007년 가계 부채가 크게 증가했습니다. "

▼미국 경제가 탄력적으로 회복하지 못하는 것도 과도한 부채탓으로 봐야합니까.

"'이번에는 다르다'는 책을 내기 전인 2009년 초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와 함께 '금융위기의 충격(Aftermath of Financial Crisis)'이라는 보고서를 썼습니다. 극심한 금융위기 이후 정상적인 경제 회복을 기대하지 말 것을 강조했었습니다. 과도한 차입으로 경기 회복 자체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역사적 사례 연구를 통해 제시했습니다. 1990년대 말 금융위기를 겪은 한국은 단시일 내 인위적으로 부채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총생산이 급격히 줄었지만 경기 회복 강도는 뚜렷하지 않았습니까. 일본은 한국과는 다른(금융권 부실을 점진적으로 해소하는 등) 과정을 거쳤지만 그나마 국내에서 빚을 조달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해외에서 부채를 조달해 왔습니다. 부채 감축과 탄력적인 경제 회복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

▼한국인들은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바로 그 점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위기 극복에는 특효약(magic bullet)이 없습니다. 미국은 단기적인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한국 사례에서 배워야 합니다. "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우려는 기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부채를 안고 있는 가운데 통화당국이 전례 없는 양적완화 조치를 취했습니다. 국제 상품 가격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초과 설비와 과잉 노동력은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물론 국제 유가와 상품 가격이 상승하면서 물가 상승 부담이 커졌습니다. 그렇다고 아직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경기 과열에 따른 물가상승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빚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약간 높은 인플레이션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

▼미국 경제 현실에 비춰 인플레이션이 좋다는 뜻입니까.

"어빙 피셔(계량경제학의 창시자)도 1930년대 비슷한 주장을 폈습니다. 인플레이션으로 (결과적으로) 빚 부담이 줄어도 경기 침체기에는 GDP가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에 GDP 대비 부채 비율이 하락하지 않습니다. 과도한 부채가 더욱 악화될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인플레이션보다는 자원활용 부진을 걱정해야 합니다. 정부와 민간 부채가 동시에 과도한 상황이라면 낮은 인플레이션보다는 어느 정도의 높은 인플레이션이 바람직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

▼미국의 재정적자는 글로벌 불균형 현상에서 기인한 측면이 있습니다. 글로벌 불균형이 해소될 것으로 예상합니까.

"금융위기 전에는 가계의 저축이 계속 줄었습니다. 단순히 말해 저축보다 투자가 많으면 적자가 발생합니다. 위기 이후 민간의 저축은 살아나고 디레버리지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공 부채는 상황이 더 악화됐습니다. 재정적자가 더 늘어났습니다. 중국을 탓할 게 아니라 미국 정부 차원에서 재정적자 해소책을 마련하는 게 절실합니다. "

■ 라인하트는 누구

IMF서 국가부도 연구…2007년 금융위기 경고

쿠바 태생으로 11세 때 미국으로 이민와 플로리다에서 자랐다. 1981년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2008년 JP모건체이스로 피합병)에서 4년6개월 동안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했다.

2001~2003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근무하며 각국의 금융위기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11년 동안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와 함께 선진국의 은행 및 신용위기를 분석,2009년 '이번에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를 출간했다. 2007년 말과 2008년 초 전후 최악의 금융위기를 경고하면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주요 저서로 '이번에는 다르다'(2009),'신용평가사와 글로벌 금융위기시스템'(2002),'이머징 마켓 조기경보시스템'(2000) 등이 있다.

워싱턴=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