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제3노총에 거는 기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하지만 과도한 임금인상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면서 일본 경제는 더욱 위기로 몰렸다. 이때 노동현장의 흐름을 바꾼 해결사가 등장했다. 일본 금속노협(IMF-JC) 소속의 신일본제철 일본강관 도요타 닛산 도시바 히타치 이시카와지마하리마 미쓰비시중공업 등 8개 핵심 사업장 노조지도자들이었다. 이들은 총평이 주도한 춘투에 반기를 들고,노조가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대신 정부는 한 자릿수 물가안정에 노력할 것을 골자로 하는 '국민경제정합론'을 정부에 제시했다.
일본 정부는 이 제안을 수용했다. 총평은 노조가 파업권을 포기했다고 비판하며 파업권 탈환을 위한 투쟁을 시도했지만 일선노조원들의 호응이 없어 실패하고 말았다. 국가경제를 살리겠다는 대기업 노조지도자들의 노력 덕분에 1976년 임금인상률이 한 자릿수(8.8%)로 떨어졌고,물가도 9.5%까지 내려 앉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총평이 주도하던 강경투쟁이 완전 퇴조하고 합리적 노동운동이 뿌리내리게 됐다.
우리나라 노동현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기존 상급노동단체들과는 다른 노선의 새로운 노동운동을 기치로 내건 제3노총(가칭 국민노총)이 공식활동을 선언한 것이다. 일본 대기업 노조지도자들이 노동운동의 물줄기를 투쟁에서 상생으로 바꿨듯이 제3노총도 서울지하철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KT 전국지방공기업 등 주로 대기업과 공기업 노조간부들이 참여,기존 노동운동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들은 기득권 노동세력을 대변하는 양대노총과는 차별화된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의 총평이 투쟁을 포기하고 온건노선을 택한 대기업 노조를 강력히 비난했듯이,우리나라 양대노총도 제3노총 등장에 "노동운동을 분열시킨다"며 거센 공격을 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의 온건 노동운동이 노동현장을 평정했듯이 제3노총의 상생노선도 빠르게 정착될 것으로 보인다.
제3노총은 6월 중 설립신고서를 낼 예정이지만 이미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양대노총이 내부 개혁을 외면한 채 '투쟁' 타령을 일삼다가 존립기반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제3노총은 민주노총 탈퇴세력뿐 아니라 기아,현대 등 강성사업장과 삼성 포스코 등 무노조 기업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제3노총 세력은 아직 10만~15만명 정도로 양대노총에 비해 훨씬 작은 규모지만,복수노조가 시행되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일선 조합원들은 명분과 실익이 없는 막무가내식 투쟁에 등을 돌리고 있어 양대노총이 변화를 거부한다면 현장의 주도권은 제3노총으로 넘어갈 수 있다.
제3노총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사회양극화 해소를 주요한 과제로 제시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주장도 사회 갈등만 부추길 소지가 많다.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의 조직문제에 어떻게 접근할지도 스탠스를 확실히 정할 필요가 있다. '제3노총 역시 또다른 기득권 세력'이라는 비판도 염두에 둬야 할 대목이다.
윤기설 노동전문 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