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값이 폭락했다. 직접적인 원인은 '보이는 손'이다. 미국 시카고상업거래소(CME)그룹의 개입이었다. CME그룹은 은 선물 거래를 위해 예치해 놓는 거래증거금을 최근 1주일 새 세 차례에 걸쳐 37.9% 올렸다. 투기 방지가 명분이었다.

투자자들은 증거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을 팔아치웠다. 조지 소로스가 운용하는 헤지펀드 등 유명 투자자들도 2년간 모은 은을 대거 매도했다. 3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은 7월 인도분 가격은 온스당 42.59달러로 2거래일 만에 12.4% 주저앉았다. 미국 당국의 은에 대한 대형 규제는 이번이 세 번째다.

역사적으로 은은 금과 함께 화폐처럼 쓰였다. 그러나 대규모 은광의 발견으로 은값이 떨어지면서 1873년 미국 정부는 은본위제를 폐지했다. 은의 가치는 인플레이션 헤지의 보조 수단 정도로 주저앉았다.

은이 다시 빛을 본 것은 1970년대다. 베트남전쟁,오일쇼크가 이어지며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석유재벌의 아들인 헌트 형제는 1974년부터 은을 매집하기 시작했다. 당시 온스당 3.27달러던 은값은 1980년 1월 41.5달러까지 치솟았다. 헌트 형제는 약 1억온스의 은을 모았다. 이때 미 당국의 두 번째 개입이 이뤄졌다. CME는 1인당 최대 은 보유량을 300만온스로,뉴욕상품거래소(COMEX)는 1000온스로 제한했다. 헌트 형제는 7년에 걸쳐 모은 은을 팔아야 했고 은값은 10달러대까지 급락했다.

CME가 거래증거금을 인상하자 은 시장에서 일부 투매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귀금속 투자컨설팅업체 CPM그룹은 "은 가격 급등 원인은 충분한 예탁금 없이 선물 계약을 연장해 온 투기세력들"이라며 "은 가격은 온스당 37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은값 폭락이 상품 랠리에 종지부를 찍을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고공 행진하던 금 곡물 원유 등 상품가격이 이날 동반 하락세로 돌아섰다. 런던 국제선물거래소(ICE)에서 북해산 브렌트유는 전일 대비 1.3% 떨어져 배럴당 123.44달러에 마감됐다. CME에서 옥수수 7월물은 부셸당 723.75센트로 1.5% 내렸다. "은 거래증거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부 투자자들이 다른 상품을 매도한 것"(빌 오닐 로직어드바이저 회장)이 한 원인이다. 국제기구들이 잇따라 원자재 파생상품 시장에 대한 핫머니 규제 움직임을 보이면서 거래증거금 인상이라는 규제 카드가 다른 원자재로 확산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오는 6월 말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와 중국의 긴축 강화 등도 상품시장의 랠리에 종언을 예고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강유현 기자 y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