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조사위, 과도정부 無力·無能이 주원인 지적
전쟁범죄 규정은 안 해…키르기스 정부 강력 반발

지난해 6월 키르기스스탄 남부에서 발생한 키르기스계와 우즈베키스탄계 간의 유혈 민족 분규에 키르기스군이 연루된 혐의가 있다고 3일 키르기스사태 국제 조사위원회(KIC)가 발표했다.

AP와 AFP 통신 등에 따르면, KIC는 이날 발표한 보고서에서 또 유혈사태 이후 벌어진 키르기스 과도정부의 자체 조사 과정도 편향됐으며, 로자 오툰바예바 현 대통령이 이끌던 당시 과도정부가 유혈사태를 막기 위한 사전 조치들도 제대로 취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키르기스 정부의 의뢰에 따라 중립적인 외국 인사들로 구성된 국제적 조사위인 KIC가 오랜 조사 끝에 이 같은 보고서를 발표함에 따라 유혈민족분규 처리를 둘러싼 논란이 키르기스 안팎에서 다시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유혈분규의 직접적 발단은 지난해 6월 10일 키르기스계와 우즈벡계 폭력배 간 충돌이었으며 이것이 빠르게 전면 충돌로 확대되면서 470명이 사망하고 41만 1천여 명이 피난을 가는 사태로 비화했다고 KIC는 설명했다.

KIC는 양측 모두 무장을 하고 상대를 공격했으나 다수민족인 키르기스계의 공격이 주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당시의 정황과 증거들에 비춰보면 키르기스계가 우즈벡계를 공격한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으며, 이 의심이 "법정에서 입증될 경우 이는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로 기록될 것"이라고 KIC는 비판했다.

또 키르기스계 폭도들의 우즈벡계 공격과 관련해 군이 조직적 역할을 했다는 증거가 있다고 밝혔다.

군이 키르기스계 민간인들에게 무기를 지급하기도 했으며, 우즈벡계에 대한 공격 현장에 제복을 입은 군인들을 실은 장갑차가 나타나 이들도 공격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KIC는 "당시 공격자들에게 나타난 규율과 질서는 자연발생적인 폭도들의 정상적인 행동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당시 사망자 중 우즈벡계가 최소 4분의 3인데도 이후 고발되거나 기소된 사람은 59명이 우즈벡계인데 반면 키르기스계는 7명 뿐이라고 지적하면서 분규 이후 정부의 조사에서 우즈벡계를 선택적으로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도 분석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KIC는 민족분규의 주요 배경으로 쿠르만벡 바키예프 정권이 민중봉기로 무너진 이후 권력공백기의 정치적 불안정과 두 민족 간의 역사적 반목, 오슈 시(市) 등 남부 지역에 만연한 범죄 등을 꼽았다.

그러나 당시 민족분규에 따른 유혈사태가 여러 경로로 예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오툰바예바가 이끌던 과도정부는 사전에 군을 배치하는 등 적절한 조치들을 취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회원국 의원친선기구(PA)의 킴모 킬주넨 특사가 이끈 KIC는 그러나 당시 유혈공격을 전쟁범죄나 특정 인종 등에 대한 집단학살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이 같은 KIC의 보고서가 나오자 키르기스 정부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며 국가 내부적으로 또다시 긴장을 조성할 수 있다고 강력 반발했다.

정부는 "KIC의 조사결과를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소수 우즈벡계를 무방비 희생자로 묘사하면서 키르기스계에 대한 편견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편, 민족분규 1주년을 앞두고 키르기스 경찰이 보안을 강화하고 있다고 오슈시 공보실이 3일 밝혔다.

이타르 타스 통신에 따르면 오슈 시의 멜리스 미르자크마토프 시장은 이날 성명에서 "일어날지도 모를 테러행위와 폭동을 저지하기 위해 무역센터, 공항, 버스터미널을 비롯한 공공장소에 대한 24시간 감시하는 등 보안조처를 강화했다"고 밝혔다.

미르자크마토프 시장은 또 키르기스계와 우즈벡계 사회 대표들에게 민족 간 화합을 강화하고 터무니없고 자극적인 소문 확산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알마티연합뉴스) 이희열 특파원 jo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