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을 덮으세요. " 당진제철소에 대한 투자 검토가 한창이던 2006년 5월,임원회의에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뜻밖의 아이디어를 던졌다. 회의는 비산 먼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를 놓고 난상토론 중이었다. 기존 제철소처럼 철광석과 유연탄을 야적장에 쌓아두는 개방형 시설로는 먼지로 인한 환경 오염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지하에 공간을 만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해안 지대라 지층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만…."한 임원의 제안을 한참 듣던 정 회장은 "지붕을 씌우면 될 것 아닙니까"라며 새로운 안을 내놨다. 글로벌 철강업계에서 유일무이한 밀폐형 원료처리시설은 이렇게 탄생했다.

◆단숨에 1200만t 고로시대

2006년 10월 당진 일관제철소 착공으로 현대제철은 네 번째 도전 만에 고로제철소의 꿈을 이뤘다. 당시 정 회장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원칙으로 내세운 것이 '속도'와 '친환경' 두 가지였다.

후발 주자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선 조강 생산 능력을 압도적인 속도로 늘릴 것,그리고 전 세계 철강업체들이 벤치마킹할 수 있는 친환경 제철소를 만들라는 주문이었다.

현대제철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2007년 7월 제1고로 토목공사에 착공, 작년 1월 연산 400만t 규모의 고로 화입식을 가졌다. 2008년 7월에 착공한 제2고로도 지난해 11월에 완성됐다. 공기도 한 달가량 단축했다.

당진제철소 제2고로 화입식이 열린 작년 11월23일,단상에 올라오던 정 회장은 맞잡은 두 손을 불끈 들어올렸다.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한 해에 2개의 고로를 가동시킨 데 대한 자부심이 표정 속에 역력했다. 한 해에 조강 생산을 800만t이나 늘린 일은 세계 철강사에 유례없는 일로 기록됐다.

'MK식 혁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현대제철은 올 4월 3조2550억원을 투자, 2013년 9월 완공을 목표로 3고로 건설에 착수했다. 2고로를 완공한 지 불과 4개월 만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두 개의 고로가 빠르게 안정됐고,고로 운영을 통해 흑자를 실현하면서 일관제철사업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강판,조선용 후판 등 고급 판재류를 생산하는 고로제철소를 연산 1200만t 체제로 끌어올림으로써 현대제철은 연간 120억달러 수준의 수입대체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MK 웨이-창의와 혁신

정 회장의 '실험'이 주목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세계 최초로 자원순환형 사업모델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현대제철(열연강판)→현대하이스코(자동차용 냉연강판)→현대 · 기아차(완성차)→폐차→현대제철(전기로에서 녹여 철근 · 형강 생산)→현대건설(건자재)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를 탄생시켰다. 자원순환형 모델은 곧 완성차를 정점으로 한 수직적 계열 통합과도 맞닿아 있다.

현대제철과 현대건설 간 시너지도 상당할 전망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 시장의 판매 규격에 맞는 제품을 모두 생산하는 곳은 세계에선 현대제철이 유일하다"며 "현대건설이 어떤 시장에서 프로젝트를 따내든지 적기에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MK식 창의와 혁신'은 성과로 나타났다. 현대차는 올 1분기에 전년 동기보다 45.6% 증가한 1조8275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현대제철도 1분기 매출 3조5468억원을 올려 기존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주력산업팀장은 "그동안 현대차의 성공엔 행운이 따랐다는 시각도 없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이제부터는 'MK 웨이'가 작동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향후 자동차 업계는 도요타,폭스바겐,현대차의 3파전으로 압축될 것"으로 내다봤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