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인 발전보다 예술성을 끌어올리는 데 중점을 둔 '피겨 여왕'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29일 러시아 모스크바 메가스포르트 아레나에서 열린 2011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김연아(21·고려대)는 탁월한 예술성을 앞세워 1위에 올랐다.

첫 과제였던 트리플 러츠가 불안했던 탓에 1.5점이나 깎이고 콤비네이션 점프도 3회전-2회전으로 줄었음에도 선두로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예술점수(PCS)의 힘이 컸다.

이날 김연아는 32.94점이라는 높은 PCS를 받았다.

가장 높았던 지난해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33.80점보다는 조금 낮지만, 자신의 역대 2위에 해당하는 점수다.

영화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본드걸로 완벽하게 변신해 경쾌하고 도발적인 매력을 한껏 표현했던 당시의 연기 못지않은 예술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발레곡 '지젤'의 주인공으로 변신한 김연아는 사랑하는 이에게 속아 배신감에 고통스러워하다 죽음을 택한 소녀의 아픈 사랑을 격정적인 몸짓으로 표현했다.

특히 단순히 발레 속 지젤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역대 최고점 행진을 벌이며 피겨스케이팅의 역사를 새로 쓴 김연아라는 선수의 캐릭터와 조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 재해석해 관객들의 시선을 완벽하게 잡아끌었다.

초반에 기술적인 우위를 보여주고, 중반에 '피겨 여왕'의 우아한 품위를 뽐낸 뒤 폭발적으로 감정을 분출하는 순서로 짜인 프로그램이 이러한 목표에 잘 들어맞았다.

가슴 쪽으로 손을 모으는 등 애절한 마음을 표현하는 동작으로 시작한 김연아는 첫 점프에서 실수가 있었지만 트리플 플립-더블 토루프를 깔끔하게 뛰어올랐고, 플라잉 싯 스핀으로 이어지는 빠른 움직임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모았다.

이어 여주인공이 배신감에 충격을 받는 장면으로 넘어가면서 장중한 음악에 맞춰 살짝 속도를 늦춘 김연아는 가벼운 더블 악셀에 이어 우아한 스핀 연기로 곧 이어질 하이라이트를 준비했다.

마지막으로 실연의 아픔에 발작하다 죽음에 이르는 순간의 강렬한 음악이 흐르자 김연아는 빠르게 링크 전체를 휘저으며 폭발적으로 감정을 표현해 냈다.

기술적으로도 실수가 있었음에도 지난 시즌 못지 않은 카리스마를 뿜어냈기에 경기장을 찾은 1만여 관중도 김연아의 연기에 갈채를 보냈다.

당연히 심판들이 매긴 점수도 훌륭했다.

김연아는 스케이팅 기술과 동작의 연결, 연기, 안무, 해석 등 5가지 세부 요소 모두에서 8점이 넘는 점수를 받았다.

금메달을 목에 건 밴쿠버올림픽 때도 심판진은 김연아의 예술 점수 중 '동작의 연결' 요소에서 7.9점을 준 바 있다.

10점 만점에 9점 이상의 점수를 받은 부분도 6곳이나 돼 올림픽 때와 차이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김연아는 점프 실수 탓에 기술점수(TES)에서 2위인 안도 미키보다 1.23점이나 뒤졌지만, 높은 예술 점수로 격차를 뒤집어 1위에 오를 수 있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sncwo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