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줄기세포를 처음으로 분리 · 배양한 건 미국 존스 홉킨스대 존 기어하트 박사와 위스콘신대 제임스 토머스 박사다. 수정 후 며칠 지난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분리해낸 것은 물론 배양까지 성공했다. 1998년 이 사실이 보도되자 세계 의학계가 흥분했다. 어떤 불치병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머지않아 열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각국은 어떻게 하면 생명윤리 논란을 피하면서 연구를 선점하느냐에 집중했다.

가장 앞서간 나라는 영국이다. 복제양 '돌리'의 고향 답게 동물 난자에 사람 핵을 이식하는 이종(異種)간 체세포 복제연구를 하는 단계까지 갔다. 일본은 생명윤리 논란을 피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 교수의 유도만능줄기세포(iPS)다. 난자 대신 피부세포를 사용해 바이러스를 주입하고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방식이다. 다만 바이러스가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문제가 생겼다. 최근 영국과 캐나다 연구진은 바이러스 대신 피부세포의 유전자를 조작해 iPS를 만드는 방법을 찾아냈다.

종교계의 거센 반대로 주춤하던 미국도 다시 시동을 걸었다. 2009년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연방정부의 재정지원을 허용한 데 이어 배아줄기 세포를 활용한 척추손상 치료에 대한 임상을 세계 최초로 허가했다. 미국에는 줄기세포를 개발하는 회사만 200여개에 이른단다. 관련 논문과 특허 건수도 세계 1위다.

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차병원그룹의 망막질환 관련 배아줄기세포 치료제 임상시험을 승인했다. 연구용으로만 제한했던 배아줄기세포 치료의 서막이 열린 셈이다. 다만 불임부부가 사용하다 남은 냉동 배아에서 만든 줄기세포만 쓰도록 했고,자궁 착상 전단계의 신선 배아 연구는 허가하지 않았다.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겠다는 의도다.

현재 공식 허가된 줄기세포 치료제는 하나도 없다. 생명윤리 논란도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각국이 줄기세포 연구에 경쟁적인 것은 기존 의학을 넘어설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불치 · 난치병 환자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번 승인을 계기로 우리도 더 체계적으로 연구에 나서야 할 것 같다. 2012년 324억달러에 이를 시장(삼성경제연구소 추정)을 포기할 수 없어서다. '생명'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업도 소홀히 해선 안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