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탕 작전' 만연…전문가 "사모BW 없애라"

기업이 적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때 활용하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가 최근 잇따라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

일부 부실기업과 사모BW 투자자들이 공모해 주가를 뻥튀기하는 수법으로 거액을 챙긴 사례들이 들통났기 때문이다.

BW는 기업이 일정한 가격으로 신주의 발행을 청구할 수 있는 옵션(워런트)을 채권 소유자에게 주면서 발행하는 사채다.

투자자는 채권 이자를 보장받으면서 주가 상승기에는 시세차익을 노릴 수 있고,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기업은 회사채보다 낮은 금리에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일부 사모BW는 제도의 허점을 노린 대주주의 한탕 작전에 악용돼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사모BW시장 대형 금융범죄 온상

사모BW가 금융범죄에 어떻게 악용됐는지는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글로웍스 등 두 가지 사례에서 잘 나타난다.

검찰은 글로웍스 주가 조작과 횡령 혐의로 인터넷 음악사이트 `벅스뮤직' 창업자 박성훈씨를 구속한 데 이어 이 회사 BW를 부정매매한 의혹이 있는 벤처캐피탈 베넥스인베스트먼트의 김모 대표의 공모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SK텔레콤 임원 출신의 김 대표가 2009년 BW 50억원어치를 사들이면서 박씨와 이면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면계약에는 "2009년 12월까지 원금과 8%의 수익을 보장한다. 주가가 올라 수익이 발생하면 절반씩 나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김씨는 글로웍스가 몽골 금광개발에 투자한다는 허위공시를 통해 주가를 띄우고서 두 달 만에 원금의 2배가 넘는 124억원을 챙겼다.

국내 최대 규모의 콘텐츠펀드를 운용하는 창업투자회사인 B사도 BW 부정거래 등으로 수백억원을 챙긴 혐의가 포착돼 지난달 30일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했다.

검찰에 적발된 이들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게 BW 시장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부당거래나 시세차익 등 범죄에는 사모로 발행한 워런트가 악용된다.

워런트는 주식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콜옵션이다.

사채에 끼워주는 형태로 제공되는 워런트는 장차 휴지가 될 수도 있는 만큼 공짜로 발행해도 문제 되지 않는 점을 노려 BW 비리가 생긴다.

발행사 대주주는 워런트의 절반을 되사는 이면계약을 체결하는 게 일종의 관행이다.

정관상 3자배정 대상으로 문제없는 금융기관과 주로 범행을 공모한다.

계약이 끝나면 호재성 공시를 띄워 주가를 확 끌어올리고서 워런트를 신주로 바꿔 처분한다.

발행사 대주주와 금융기관이 손쉽게 거액을 챙길 수 있는 구조다.

아래 시나리오를 보면 범행 과정이 더욱 분명해진다.

코스닥에 상장된 부실기업 A사는 100억원어치의 BW를 캐피탈사를 대상으로 발행한다.

캐피탈사는 100억원어치의 사채와 100억원어치 주식을 살 수 있는 워런트를 받는다.

이어 이면계약에 따라 대주주에게 워런트의 절반을 넘기면서 대가로 2억5천만원을 챙긴다.

캐피탈사로서는 100억원대 채권의 연이자 5%와 50억원 규모의 워런트가 남고, 2억5천만원을 챙기니 수지맞는 장사다.

워런트는 주가가 하락하면 행사를 포기하면 아무런 손해가 없다.

대주주도 작전이 성공하면 대박을 터트린다.

호재성 공시가 나가고서 주가가 급등해 대주주는 2억5천만원을 들여 50억원을 벌게 된다.

무려 20배의 수익을 건지는 것이다.

워런트가 헐값에 발행되고 사모 BW는 감시 사각지대에서 거래된다는 점 등이 범죄에 취약한 대목이다.

한탕 작전에는 연예인이나 재벌가 자녀 등 유명인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도 특징이다.

한 채권 전문가는 27일 "중소형 코스닥업체가 사모 BW로 재산을 축적하거나, 부를 물려주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CB보다 돈이 적게 들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투자자는 이런 사실을 모른 채 당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모 발행을 막는 게 근본 처방이다. 사모가 아니면 BW 발행이 힘든 회사라면 주주 동의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경영권 승계ㆍ지배권 강화에도 악용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2007년 1월~2009년 6월에 유가증권시장에 BW를 사모로 발행하고서 BW나 워런트를 최대주주나 특수관계인이 인수해 지배권 확대나 경영권 승계에 이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곳은 15개사, 21개 사례나 됐다.

21건 모두 워런트만 뗄 수 있는 분리형 옵션을 가지고 있어 최대주주나 특수관계인은 워런트만 보유할 수 있었고, 17건은 최대주주 등이 워런트만 가졌다.

금융기관 등에 BW를 발행하고서 최대주주 본인이나 자녀, 계열사 등이 신주인수권만 사들인 것이다.

21건의 BW에는 모두 주가가 하락하면 워런트 행사가격이 자동으로 내리는 리픽싱 옵션(refixing option)이 첨부돼 이를 인수한 최대주주나 특수관계인의 이익이 더 커졌다.

이들이 워런트를 모두 행사하면 최대주주 등의 지분율이 최소 2.4%에서 최대 11.4%까지 늘어나는 효과가 있었다.

BW를 이용한 편법증여는 과거 재벌가에도 많았다.

삼성SDS와 두산, 현대산업개발, 효성, 동양메이저, 웅진, 오리온 등의 재별 계열사가 지배주주 일가에 BW를 발행했다.

당시 유가증권신고서 제출 의무가 없던 국외발행을 가장했다.

경제개혁연대는 해당 기업을 상대로 법원에 BW 발행 무효소송을 내거나 감독기관의 조사와 자발적 소각을 촉구해 두산, 현대산업개발, 효성, 동양메이저 등의 지배주주 일가가 취득한 워런트를 전량 무상으로 소각하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곽세연 기자 ksye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