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재덕(才德)을 충분히 간직하고도 액궁하여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이해와 귀천에 밝았는데도 종신토록 곤궁한 사람이 있다. 둘 다 상(相)에다 허물을 돌리지만 처음부터 상을 따지지 않고 우대하고 자본을 대주었더라면 재상도 되고 큰 부자도 되었을 것이다. '

다산 정약용은 이처럼 관상을 믿지 않았다. 상(相)은 익히는 데(習) 따라 변하는데 결과만 보고 상이 좋으니 나쁘니 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다산이 답답함을 토로한 지 200년이 넘은 지금도'부자상(富子相)'이 따로 있다고 믿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귀 잘생긴 거지는 있어도 코 잘생긴 거지는 없다'는 식이다. 관상 성형 전문병원까지 있다. 재복이 따른다고 알려진 얼굴의 특징은 비슷하다. '눈동자가 작고 짙다. 눈썹이 눈보다 길고 눈썹 사이에 점이 있다. 양쪽 눈썹 사이(인당)가 넓다. 입은 두툼하며 윤곽이 또렷하고 꼬리가 올라간다. 코끝과 콧방울이 풍만하다. 이마가 반듯하고 팽팽하다. 턱은 살짝 각진 듯 둥글게 내려온다. '

부자의 비밀이 궁금한 나머지 얼굴을 뜯어보는 건 서양사람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영국 구직 사이트 마이잡그룹이 얼굴과 행동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에게 맡겨 조사했더니 부자의 얼굴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영국의 최고 부자 남녀 각 10명의 얼굴에서 공통점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남자 부자는 매부리코와 큰 눈 · 솟은 콧방울,여자 부자는 긴 인중과 넓은 이마 · 치켜 올라간 눈썹을 지니고 있더란 얘기다. 그러면서 그같은 특징을 합성한 이른바 부자상의 사진도 내놨다.

얼굴을 바꾸면 정말 부자가 될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중국의 관상학을 집대성한'마의상서(麻衣相書)'에서조차 '관상은 마음상만 못하고,마음상은 덕상만 못하다(觀相不如心相 心相不如德相)'고 돼 있다는 마당이다.

다산의 지적은 더 날카롭다. '거처는 기질,봉양은 신체를 바꾼다. 부귀는 뜻을 음란하게 하고 우환은 마음을 슬프게 해 아침엔 무성하다 저녁에 시드는 사람도 있고 어제는 초췌했다 오늘은 살쪄 윤택해진 사람도 있으니 상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사서인(士庶人)이 상을 믿으면 직업을 잃고 경대부(卿大夫)가 상을 믿으면 친구를 잃고 임금이 상을 믿으면 신하를 잃게 된다. '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