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표 KAIST 총장은 지난 8일 열린 국회 교과위에서 차별적 등록금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차별적 등록금 제도가 자살의 원인이었다는 국회와 사회 일각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를 폐지한다고 해서 곧바로 학생 전원에게 학비 면제 혜택을 주는 종전의 제도로 돌아간다면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차별적 등록금제는 학점 미달 학생들에게 학업 성취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사실상의 유일한 장치다. 차별적 등록금제를 기어이 폐지해야 한다면 그 대안은 백번을 양보하더라도 차별적 장학금제 형태로라도 유지되는 것이 마땅하다. 네거티브 제도를 일종의 포지티브 방식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라도 소수의 성적 부진에 처한 학생들이 갖는 소외감이나 절망감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등록금 차별화를 폐지하고 무조건적인 학비 면제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이는 KAIST의 설립 목적에도 맞지않을 뿐더러 경쟁을 통한 대학경쟁력 강화라는 서남표 개혁의 당초 목적과도 맞지 않게 된다. KAIST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과학기술 특화 대학이다. 납세자인 국민들은 자신의 세금을 내서라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세계 최고 수준의 이공계 인재를 길러내는 게 중요하다고 인식해 기꺼이 이 학교의 학생들에게 학비면제의 혜택을 준 것이다.

사실 그동안에도 KAIST의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졸업생 상당수가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거나 로스쿨로 가거나,심지어 증권가와 사교육 시장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런 현실을 감안한다면 등록금을 전액 국비로 지원하는 것은 논리에도 맞지 않고 더구나 학업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에게까지 면제 혜택을 주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KAIST 입학이 면허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살 문제는 상담 교수제를 강화하는 등 다른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