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서울 연지동 현대상선 사옥.이석희 현대상선 사장(이사회 의장)이 2대주주인 현대중공업그룹 대리인에게 "마지막 발언"이라며 이렇게 물었다. "정말 표결을 원하나?"

현대중공업 측 대리인 2명은 머뭇거림 없이 우선주 발행 한도를 현행 2000만주에서 8000만주로 늘리자는 현대상선의 정관 변경 제안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곧바로 표결에 들어갔고,결과는 현대상선의 패배였다. 주총 참석 의결 주식의 3분의 2인 66.67%의 찬성을 얻어야 하나,현대상선은 64.95%를 얻어 정족수에 불과 1.71%포인트 모자랐다. 이번 정관 변경을 통해 경영권 안정과 함께 투자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다중 포석은 '1.7%의 벽'을 넘지 못해 좌절됐다.

이날 표대결은 박빙의 승부였다. 범 현대가(家)의 지분은 현대중공업,현대백화점,KCC 등을 합쳐 38.73%로 현대그룹(우호지분 포함 42.25%)과의 격차는 3.52%포인트에 불과했다.

이런 지분 구도에서 정관 변경안 통과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으나,현대차현대건설이 주총에 불참하면서 예측불허의 상황이 벌어졌다. 두 회사의 보유 지분은 8.20%로 3대주주다.

하지만 이날 승부는 결과적으로 현대산업개발에 의해 갈렸다는 평가다. '중립'으로 알려져 있던 현대산업개발(1.31%)이 반대표를 던지면서 판세가 범 현대가 쪽으로 기울었다. 현대산업개발은 작년 말 현대상선 유상증자 때 범 현대가에서 유일하게 증자에 참여했던 곳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처음에 찬성 위임장을 제출한 현대산업개발이 지난 24일 갑자기 위임장을 회수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일부 소액주주들이 정관 변경 반대론에 위임장을 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주총에 앞서 23일 "주식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라며 정관 변경에 대한 반대 의사를 현대상선 이사회에 전달했다. 현대중공업그룹,KCC,현대백화점 등 현대상선의 범 현대가 주요 주주들은 2007년 3월 주총에서도 전환사채(CB) 및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제3자 배정을 명시한 정관 변경안에 대해서도 퇴짜를 놨었다.

현대백화점 대리인은 "4년 전 주총에서 부결한 안을 왜 다시 추진하려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투자 재원 마련이라는 명분으로 1대주주의 지분을 늘리는 데 돈을 댈 수 없다고 주장했다.

향후 관심은 이번 주총 대결이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질 것이냐 여부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이 현대상선에 대한 경영권 장악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장 양측 간의 경영권 분쟁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경영권 장악 의도가 있다면 작년 말 현대상선의 유상증자 때 현대중공업 등 범 현대가 계열사들이 참여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