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지진해일은 최악의 시기에 일어났다. 지진해일 이전에 이미 일본 경제는 경기회복 지연,국가채무 누적,그리고 재정적자 지속으로 빈사상태에 빠졌다. 국내총생산에 대비시킨 최근 일본의 국가채무는 재정위기에 몰린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훨씬 웃돌고 있다. 일본의 국가신용등급 하락도 국가부채 때문이다.

일본은 미증유의 자연재해에 더해 '엔고'라는 또 다른 쓰나미를 맞고 있다. 복구자금 마련과 보험금 지급 등을 위한 해외자산 매각이 본격화되면서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청산되고,엔화 환전 수요로 이어져 엔고를 가져온 것이다. 엔화 가치는 한때 달러당 76엔대까지 올라 2차대전 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수출기업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 엔고를 마냥 방치할 수는 없다. 엔화 안정을 위한 주요 7개국(G7)의 공조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G7의 공조 등으로 일각에서 일본 지진해일의 후폭풍이 진정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낙관적 전망을 하기에 상황은 너무 열악하다. 1995년 고베지진에 비해 악재가 도처에 깔려 있다. 우선 글로벌 '공급망 붕괴'의 파장이 다르다. 도로,항만,원전 등 인프라가 크게 파괴됐기 때문이다. GM과 애플,노키아 등 다국적 기업의 '글로벌 소싱'도 외부 충격에 의한 경제적 피해를 확대시키고 있다.

일본 채권시장이 국채발행을 소화해 낼 만큼 여력을 갖고 있지 못한 것도 문제다. 대규모 채권 발행은 국채 값을 폭락시키고 장기금리를 올려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남은 선택지는 채권을 발행하고 이를 일본은행에 전액 인수시키는 것이다. 일본은행이 국채 인수를 위해 돈을 찍어 내면 과잉유동성으로 다시 '자산버블'을 만들게 된다.

일본은 복구재원 마련을 위해 미국 국채를 팔 수도 있다. 미국 채권을 대량으로 국제 시장에 매각해 채권 값이 떨어지면 중국과 대만,한국 등 달러표시 채권 보유국은 큰 손실을 입게 된다. 경우에 따라 추가손실 회피를 위해 채권국들이 앞다퉈 미 국채 매각에 나설 수도 있다. 달러가 흔들리면 원유,곡물,지하자원 등 현물자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전 지구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촉발될 수 있다.

일본의 국가부채는 1995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92.4%에서 2010년에 226%로 증가했다. 이는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경기부양을 위해 공공지출을 꾸준히 늘린 결과다. 일본 정부는 국민에게 직접 현금을 뿌리는 선심 정책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 민주당 정권도 자녀 보육수당 지급,고속도로 통행 무료화 등을 쏟아냈다. 재정개혁이 시급하지만 정치 생명을 걸고 국민을 설득하는 정치인은 없었다. 일본 기업들도 글로벌 경쟁보다 손쉬운 국내 경쟁을 택했다. 과도한 내부 지향은 해외 유학생의 급감으로 나타났다. 지진해일의 충격을 극복하려면 일본 정부도 기업도 변해야 한다.

'매뉴얼 사회'의 굴레도 과감히 벗어야 한다. 매뉴얼화 과정에서 인간의 유연성,창의성과 책임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매뉴얼에 의존하면 임계치 이상의 변화를 수용할 수 없다. 전례가 없으면,규정집에 나와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일본은 제로금리와 재정적자로 지탱해야 할 만큼 경제의 펀더멘털이 크게 위축됐다. 일본 사회는 현실에 안주하면서 변화가 필요한 순간에도 변화를 주저해 왔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번 지진해일을 계기로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리고 재성찰하는 '웨이크 업 콜(wake up call)'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일본 열도를 관리하는 차원을 넘어 활력을 고취시켜야 한다. '역동성의 일본'을 만들지 않으면 일본의 미래는 없다. 고령화 경제,식물경제로 전락할 수도 있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