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대지진 피해를 입은 일본이 복구 자금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재정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일본 정부는 수십조엔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복구 자금을 마련할 여력이 없다. 때문에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엔화를 찍어내는 발권력을 동원하도록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대지진 피해 복구의 재원 조달을 위해 10조엔(135조원) 이상의 '부흥국채'를 발행할 방침이라고 산케이신문이 18일 보도했다. 이 국채는 채권시장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전액 일본은행에 인수시킬 계획이다. 일본은행은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인수하려면 결국 돈을 찍어내는 발권력을 동원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당초 2011년도(2011년 4월~2012년 3월) 예산에서 피해복구 자금을 조달하는 걸 검토했다. 자녀수당과 고속도로 무료화 등 선심성 공약 예산을 줄여 복구 자금을 마련하는 것.그러나 이들 공약을 모두 포기하고 예산을 돌려도 최대 3조3000억엔에 불과하다. 수십조엔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복구 자금 충당엔 턱없이 모자란다.

1995년 1월 발생한 한신(阪神) 대지진 당시엔 세 차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해 3조3800억엔을 피해 복구비로 조달했다. 그러나 이번 대지진의 피해는 지역 범위와 강도가 한신 대지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민주당 연립정부의 금융담당상을 맡기도 했던 야당인 국민신당의 가메이 시즈카 대표는 "10조~20조엔으로도 모자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돈을 모두 정상적인 국채로 발행해 조달하면 채권시장이 붕괴된다는 점이다. 일시에 수십조엔의 국채가 시장에 나오면 국채값이 폭락(국채금리 폭등)하고, 장기금리가 상승해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 더구나 국가부채(국채 · 지방채 발행 잔액)가 1000조엔에 육박해 국내총생산(GDP)의 200%를 넘어선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추가 국채 발행의 여력이 거의 없다.

그래서 짜낸 게 국채의 일본은행 인수다. 원래 일본 재정법상 일본은행의 국채 인수는 금지돼 있다. 일본은행이 국채를 인수하면 발권력을 통한 통화량 증가로 이어져 물가 상승을 유발할 수 있어서다. 또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이 뒤섞이는 부작용을 낳는다. 그러나 일본 재정법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경우 국회 의결을 거쳐 일정 금액까지는' 일본은행의 국채 인수를 허용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3 · 11 대지진 피해 복구는 이 예외 조항의 '특별한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일본은행이 국채 인수를 위해 돈을 찍어 내면 '자산버블(거품)'이 우려된다. 국중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재정학)는 "당장 시중 통화량이 늘더라도 일본은 소비 등 수요가 워낙 약해 전반적인 인플레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그러나 시중에 풀린 돈은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투자로 몰려 버블을 만들고,이게 나중에 골칫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