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의 재스민혁명과 이집트의 무바라크 축출을 이끈 것은 과연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의 힘이었을까. 서방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사람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없었다면 무바라크는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도구들은 단지 약한 형태의 조직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뿐 최근 중동의 변혁은 우연히 시기가 맞물린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종이를 돌리든,트위터를 이용하든 의사전달 방식은 언제나 존재했다. 중요한 것은 언제 어느 시점에 이러한 의사소통 방식이 일련의 정치적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다.

최근 이집트의 혁명과정과 유사하게 전개된 것은 1998년 인도네시아 민주화 시위다. 인도네시아의 민주화 시위에는 휴대폰 라디오 팩스가 메시지 전달에 큰 역할을 했다. 1998년 5월15일 수하르토 대통령이 이집트에서 원조를 얻기 위한 회담을 일찍 마치고 돌아왔을 때 인도네시아는 반정부 시위로 들끓고 있었다. 시위 시작 일주일도 안 돼 수하르토는 대통령직에서 32년 만에 물러났다. 인도네시아의 상황을 비춰 보면 수하르토의 하야는 불가피한 듯 보이지만 그것은 사실 국민들의 분노와 통신기술 간 상호작용의 결과다.

당시 소통 수단은 휴대폰이었다. 학생 시위세력은 휴대폰을 통해 시위대를 조직하고 자신들과 뜻을 같이하는 정치 엘리트와 연락을 취했다. 잘 훈련되지 않은 경찰이 자카르타 트리사키대의 시위 학생들에게 발포했을 때도 휴대폰을 통해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

라디오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방 라디오 채널을 통제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그들이 시위 진행 소식을 알리고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또 하나는 팩스였다. 당시 각료들은 집단 사임의사를 밝힌 편지를 수하르토에게 전달했지만 수하르토는 편지를 읽지 않았다. 결국 대통령의 법률 고문은 팩스로 편지의 사본을 언론에 공개했고 수하르토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현대 통신기술이 지배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직접적인 환경을 만들어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배체제가 전복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든 것은 경제 침체와 정치적 후퇴에 대한 불만이다. 하지만 통신기술은 저항세력에게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파벌을 유지하고 새 정치적 질서에서 살 길을 모색하도록 도와줬다.

우리는 종종 반정부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 의사소통수단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반정부 세력의 결집에 소통수단이 절대적이지는 않다. 다만 저항의 방향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현대 통신기술과 대중의 불만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서방 세계에서는 이 문제가 연구대상에 그치겠지만 당장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권위주의 지배체제의 수장들에겐 통신수단의 발달이 그다지 달갑지 않을 것이 뻔하다.

왜그스태프 < WSJ 칼럼니스트 >

정리=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


[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이 글은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에서 기술의 역할에 대해'라는 책의 저자인 제레미 왜그스태프가 '기술이 혁명을 만든다(Technology Shapes Revolution)'는 제목으로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