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는 격심한 혼란을 겪은 뒤에야 안정되는 습성이 있다. 1980년대 초 한국이 그랬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쥔 전두환 정부가 물가잡기에 올인한 것은 오일쇼크로 물가가 급등하는 폐해를 겪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리는 미국의 폴 볼커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맡으면서 두 자릿수 금리 정책을 편 것도 당시 물가불안이 극에 달했던 탓이다.

정치적인 위기로까지 번지지 않는다면 정부는 물가가 적당하게 오르는 것을 좋아한다. 돈을 찍을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화폐발행액은 2000년 21조원에서 2010년 43조원으로 늘었다. 시중은행이 무이자로 한국은행에 맡겨야 하는 돈(지급준비예치금)까지 합친 본원통화는 이 기간 중 28조원에서 74조원으로 불어났다. 증가율이 164%에 달한다.

반면 국내총생산(GDP)은 이 기간 중 51% 늘어나는 데 그쳤다. 실물에 비해 돈이 더 많이 풀리다보니 물가는 매년 2.2~4.7%씩 올랐다. 물가가 오르면 정부빚(지난해 말 407조원)의 실질가치가 줄어들고,화폐가액을 기준으로 부과하는 세금은 늘어나게 된다. 정부가 지난 10년간 각종 세금공제 등 선심을 썼는데도 2000년(93조원)의 두 배인 178조원을 지난해 국세로 거둬들인 것도 '물가의 마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부가 물가의 달콤함에 취하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북아프리카의 튀니지 정권이 '반(反)독재 재스민 혁명'의 물결에 휩쓸려 몰락한 데는 고물가에서 비롯된 국민생활고 탓이 컸다. 이명박 대통령이 "성장보다 물가가 우선"이라고 선언한 것도 민심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구제역과 한파,고유가가 한꺼번에 몰려와 서민 생계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사람들이 장바구니에서 느끼는 물가는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지난 2월 4.5%)를 훨씬 웃돈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정부 고위관계자는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고 있다는 인상이라도 심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통령이 석유값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공정거래위원회가 '물가기관'을 자처하고,기획재정부가 생필품값 인상을 억누르는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정부의 시장 개입이 서민의 분노를 다소 누그러뜨리는 정도의 효과를 낼 뿐,실제로 물가를 떨어뜨리지는 못할 것이라는 자백이다.

정부는 최근의 물가 급등이 '공급 측면'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해외에서 들여오는 석유,원자재,곡물 가격 급등으로 물가불안이 터졌다는 것이다. 1970년대 석유파동 때처럼 국제유가가 치솟는 것을 무슨 수로 막겠느냐는 얘기다.

하지만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돈과 상품의 비례관계가 물가다. 화폐발행액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인 2009년 21.6% 늘었다. 2010년에도 16%나 증가했다. 욕조에 담긴 물이 철철 흘러 넘칠 정도로 최근 2년 사이에 돈이 많이 풀렸다. 돈이 돌아가는 속도가 정상화되면 물가는 숨가쁘게 뛸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두 달에 한 번 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는 '아기 걸음마'로는 고삐 풀린 물가를 잡기 어렵다. 유류세도 금방 내리지 않겠다고 한다. 환율도 손대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모든 방법을 동원해 물가를 반드시 잡겠다고 말한다. 알맹이 없는 야단법석이다. 넉넉하게 몇 년간은 고물가를 데리고 살겠다는 마음을 먹고 편하게 지내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

현승윤 경제부장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