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과 밀가루 업계가 정부의 강력한 물가안정 기조에도 불구하고 제품값을 올리겠다고 나섰다. 원당 소맥 등 국제 원재료 가격이 급등해 더 이상 적자폭을 감수할 수 없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식품 기초소재 가격이 잇따라 오르면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확산돼 제과 음료 등 2차 제조식품 가격도 덩달아 오를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설탕값 왜 올렸나

CJ제일제당은 당초 작년 말 제품가격을 15% 정도 올릴 방침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정부의 물가안정 방침에 따라 작년 말 인상폭을 평균 9.7%대로 낮췄다"며 "올초부터 추가 인상할 계획이었지만 최대한 연기해 이번에 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당회사가 설탕값 인상에 나선 것은 국제 원당 가격이 급등한 탓이다. 원당 값은 미국 뉴욕상품거래소(NYBOT-ICE)에서 10일(현지시간) 파운드당 28.71센트를 기록,1년 사이에 45.8% 올랐다. 2년 전과 비교하면 128% 급등했다.

이는 세계 최대 생산국인 브라질은 가뭄으로,한국의 원당 주 수입국인 호주는 작년 겨울 수확 막바지 철에 홍수 피해를 입어 수확량이 줄고 운송까지 차질을 빚은 데 따른 것이다. 제당의 제조 원가 중 원당이 차지하는 비중은 70~80%에 이른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달러화에 대한 원화환율이 급등한 데다 원당 가격마저 상승해 설탕 부문의 한 달 적자가 70억~100억원에 이르는 상황"이라며 "자체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상황을 넘어선 지 오래됐으며 환율을 잡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제당업체 "물가에 큰 영향 없어"

기초식품 가격이 오르자 제빵 · 제과 등 가공식품 업체들이 제품가격을 덩달아 인상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설탕과 밀가루 가격이 오르면 제과에도 인상을 검토해야 할 제품들이 일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제당업체들은 설탕값 인상에 따른 물가 상승 요인은 제한적이라고 주장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기획재정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설탕이 빵 · 과자,음료,아이스크림의 원재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4.5%,4.5%,7% 정도"라며 "설탕값을 10% 인상했을 때 이 제품들의 인상 효과는 각각 0.45%,0.4%,0.7%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소비자 물가지수에서 설탕이 차지하는 비중은 0.03%에 불과하다"며 "설탕값을 핑계로 가공식품 업체들이 필요 이상으로 가격을 올려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밀가루 업체도 "가격 올리겠다"

밀가루의 주 원료인 소맥 가격이 치솟아 제분업체들도 원가 압박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소맥값은 10일 부셸당 740.5센트에 거래돼,한 해 전(481.5센트)보다 53.7% 올랐다. 소맥은 주 생산국인 호주의 홍수 피해를 비롯해 주 수출국인 러시아가 작년 가뭄으로 곡물 수출 제한을 선언하면서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제분회사 관계자는 "최근 1년 반 사이에 세 번에 걸쳐 가격을 인하했다"고 말했다. 밀가루 업체들은 작년 1월 밀가루 종류와 중량에 따라 6.8~7.6% 가격을 내렸다. 2009년 9월에는 평균 9.3%,2008년 7월에는 8~20% 인하했다.

지난 1월 말 이후 국제 원당 및 소맥 가격이 다소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내 제당 · 제분업체들은 지난해 비싼 가격에 들여온 원재료를 생산에 투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